여성 가수들의 정치적 목소리

지난 몇 주 사이, 미국의 유명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Talyor Swift와 컨트리뮤직 밴드 딕시 칙스(Dixie Chicks)가 연달아 신곡을 발표해서 유튜브 트렌딩 상위에 올랐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직접 남장을 하고 출연한 ‘더 맨(The Man)’ 과 딕시 칙스의 ‘개스라이터(Gaslighter)’로, 두 곡 모두 현대사회의 남성중심문화를 비판하고 여성의 정치적 각성을 노래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Taylor Swift - The Man
Dixie Chicks - Gaslighter

하지만 공통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스위프트와 딕시 칙스 모두 보수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미국 남부의 음악인 컨트리뮤직에서 출발해서 팬덤을 만든 가수들이다. 그런 가수들이 왜 2020년에 이런 정치적인 메시지를 가진 노래를 발표했을까?

테네시, 텍사스, 컨트리 뮤직

컨트리뮤직은 흔히 시골에 사는 남성들이 좋아하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는 조롱을 듣는다. “작은마을”에서 자라서 “청바지” 차림으로 “픽업트럭”을 몰고 일하고, 저녁에는 “차가운 맥주”를 마시며 “여자”를 만난다 는 내용이 대부분의 컨트리뮤직 가사라는 농담이 있다. 물론 그렇게 쉽게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컨트리뮤직의 스타일과 가사가 거의 변하지 않는 것은 사실이고, 컨트리뮤직을 현대화하려는 노력이 나올 때 마다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Country music suck meme

미국에서 어린아이를 배우로 키우고 싶은 부모들이 헐리우드로 가듯, 컨트리뮤직 가수로 크고 싶다면 테네시 주 내쉬빌로 가야한다. 음악산업, 특히 컨트리뮤직이 내쉬빌의 주요산업이라고 할 만큼 내로라 하는 가수들이 여기에서 출발했다. 10대의 테일러 스위프트가 테네시 주로 간 것도 그 때문이다. 그곳에서 첫 앨범 ’Tim McGrow’를 발표한 스위프트는 슈퍼스타로 성장하기까지 컨트리뮤직 판에서 “먹히는” 노래들을 만든다.

Taylor Swift - You Belong With Me

그런 스위프트의 2009년 최고의 히트곡도 ‘You Belong with Me’로, 남자를 짝사랑하는 너디(nerdy)한 10대 여자아이의 노래라는 설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노래가 스위프트가 노래가사의 내용을 바꾸게 되는 계기를 제공하게 된다. 그 노래로 그 해 MTV 비디오 뮤지 어워드에서 ‘올해의 비디오’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칸예 웨스트가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스위프트에게서 마이크를 빼앗더니 “테일러, 니가 수상하게 되어서 기쁘기는 하지만, 사상 최고의 비디오는 비욘세 꺼야”라고 무례한 말을 해버린 것이다.

칸예 웨스트의 공격

웨스트의 주장에 동의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 해 나온 비욘세의 ’Single Ladies’는 화려한 안무와 촬영으로 지금도 수작이라고 평가받고 있는 반면, 스위프트의 뮤직비디오는 80년대 풍의 진부한 느낌이 물씬 나는 작품인 것이 사실이기 때문. 하지만, 그것은 심사위원이 결정할 일이지 스위프트의 잘못이 아니었고, 그 일로 웨스트는 심지어 당시 오바마 대통령에게서까지 핀잔을 들었다. 그 뒤로 칸예 웨스트와 테일러 스위프트는 사이가 좋을 리 없었다.

그러다가 둘 사이의 싸움이 다시 불거진 것은 2017년 칸예 웨스트가 내놓은 싱글 히트곡 ‘Famous’에서 스위프트를 “bitch”라고 부르며 자신이 스위프트를 유명하게 만들어 줬으니 섹스를 해줘야 한다는 내용을 넣은 것이다. 뒤이어 온라인에서는 스위프트가 뱀으로 등장하는 밈(meme)까지 나타나면서 웨스트 쪽과 스위프트 쪽의 편가르기 양상까지 벌어졌다.

Taylor Snake meme
Taylor Swift - Look What You Made Me Do

스위프트는 그 해 그래미 어워드 시상식에서 ‘올해의 앨범’ 상을 받으면서 수상 소감으로 “올해의 앨범상을 두 번 받은 첫 여성 가수로서 제가 세상의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여러분의 성공을 깎아내리거나 여러분의 업적과 명성이 자기 덕이라고 주장할 사람들을 만나게 될 거라는 사실입니다”라며 우회적으로 칸예 웨스트를 공격했다. 뿐만 아니라 자신이 뱀으로 등장하는 밈을 그대로 받아서 ‘Look What You Made Me Do’의 뮤직비디오에 삽입하는 등, 음악을 통해 저항하기 시작했다.

가수의 정치적 발언

그리고 2018년이 되었다. 이미 트럼프 정권 2년 차에 접어들면서 점점 여성들에게 불리한 상황이 벌어졌고 미투운동도 더욱 뜨거워지고 있던 해였다. 그 해 말 있었던 중간선거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이 사는 테네시 주의 상원의원으로 출마한 공화당 소속 마샤 블랙번이 남녀동일임금법에 반대투표하고 여성폭력방지법을 재승인하는 것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지지하지 못하겠다고 말한 후 대신 민주당 후보들에 대한 공개지지를 밝힌 것이다.

보수적인 지역, 보수적인 문화에서 성공한 여성 연예인이 자신의 팬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있는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은 용기있는 일이 분명하다.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만큼 사회분위기가 바뀐 것이기도 하다. 또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주요 팬층은 젊은 여성들이고, 여성을 위한 정책을 제일 앞에 놓겠다는 것은 어쩌면 영리한 전략일 수도 있다.

팬들과 정말로 정치적인 대립을 한 예는 따로 있다. 바로 딕시 칙스다.

1970년 전후에 태어난 X세대 여성 세 명으로 컨트리뮤직 밴드인 이들은 남부 음악의 또 다른 중심인 텍사스 주 달라스에서 오랜 인기를 끌어왔다. 테일러 스위프트가 어린 시절 가수에 데뷔하기 위해 커버로 부른 노래 중 하나가 딕시 칙스였을 만큼 컨트리뮤직계에서는 유명한 뮤지션들. 특히 남부문화, 남부사람들을 뜻하는 딕시(Dixie)와 젊은 여성들을 낮춰부르는 표현인 칙스(Chicks)를 밴드명으로 삼았을 만큼 남부문화에 익숙한 이들이다.

Dixie Chicks

그런데 딕시 칙스는 2003년 런던에서 한 공연 중에 “우리는 이 전쟁을, 이 폭력을 원하지 않는다. 미국의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이라는 것이 부끄럽다”라는 정치적인 발언을 한 것이다. 당시는 텍사스 주지사 출신의 조지 W. 부시가 대통령이던 시절이었고, 9/11 이후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다는 (훗날 거짓으로 알려진) 정보를 가지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 때였다.

공연에 참석한 영국인들에게는 환호를 받았지만, 국내 사정은 달랐다. 당시 미국인들은 군에 대한 지지가 철저했고, 무엇보다 공화당 우세에 현직 대통령을 배출한 텍사스 주 사람들의 전쟁지지는 확고했다. 그런데 딕시 칙스가 “대통령이 텍사스 출신인 것이 부끄럽다”고 했으니 그 파장은 엄청날 수 밖에 없었다. 많은 딕시 칙스 팬들이 밴드를 보이코트하면서 음반사와 밴드는 큰 타격을 입는다.

딕시 칙스는 언론에 출연해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지만, 공연장에서 이들을 죽이겠다는 살해위협이 나올 만큼 분위기는 험악했다. 그 뒤로 몇 년 동안 딕시 칙스의 팬들은 줄어들었고, 딕시 칙스는 팬이 줄어들어도 자신들을 이해해주는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만들겠다며 정치적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2020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더 맨’의 뮤직 비디오를, 딕시 칙스는 ‘개스라이터’를 발표한다. 스위프트는 이 뮤직 비디오에서 남성으로 분장하고 소위 “재수없는” 남성의 행동을 보여준다. “내가 남자라면”이라는 가정으로 공공장소에서 소변을 보고, 지하철에서 쩍벌남 행세를 하면서 남자들이 온 세상이 자신들의 것인 양 하는 행동을 비판한다.

딕시 칙스의 ‘개스라이터’에서 개스라이터(gaslighter)는 소위 개스라이팅, 즉 (대개는 남성이 여성으로 하여금) 스스로를 의심하도록 조작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즉 남성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리드 싱어 나탈리 메인의 전남편이 “개스라이터”이며, “거짓말장이”이고, “내가 가진 돈을 전부 주면 기꺼이 떠나겠지. 그게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 잔인한 짓이야”라고 비난조의 말을 퍼붓는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노래들이 큰 반향을 일으키며 유튜브에서 상위에 노출된다는 사실이다. 음악 소비자들이 변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여성 가수들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변화가 보수주의적인 음악의 대명사인 컨트리뮤직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은 (물론 스위프트는 컨트리뮤직에서 팝으로 이동했지만) 여성 소비자들의 관심사가 변하고 있고, 그들의 변화한 의식과 관심을 뮤지션들이 곡을 통해 반영하고 있다고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여성에게 힘/권력을 주는(empowerment) 추세는 그들이 대중음악의 주요 소비층으로서 목소리를 낼 때 더욱 뚜렷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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