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변혁의 물결을 타는 기업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Apartheid)에 맞서 싸운 데즈먼드 투투 주교는 이런 말을 했다. “불의의 상황에서 중립의 위치에 선다면 당신은 압제자의 편에 선 것이다.” 미국사회는 현재 코로나19 팬데믹과 최악의 경제난에 이어 1968년 이래 최대의 인종갈등과 극심한 사회불안을 겪고 있는 중이다. 소셜미디어에서 많은 팔로워를 거느리고 있는 셀렙들이 (경찰 폭력에 의해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사망한 사건에 대해) 침묵하고 있을 경우 사람들은 “당신은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플랫폼을 가지고 있으면서 아무 말을 하지 않느냐”는 비난과 함께 입장을 밝히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렇게 미국은 어느 누구도 중립으로 남아있을 수 없을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중이다.

셀렙들만 그런 압력을 받는 것도 아니다. 기업들 역시 사회변혁의 물결 앞에서 입장을 분명히 밝힐 것을 종용받고 있다. 지난 수 년 동안 세계의 많은 기업들이 소셜미디어에서 꾸준히 팔로워를 늘리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셀렙, 혹은 채널로 성장했기 때문에 그들 역시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런 압력 속에서 섣불리 의견을 밝히고 행렬에 참가했다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는 기업들이 있는가 하면, 큰 박수를 받는 기업들도 있다.

1. 역효과를 낸 NFL

사회적 메시지를 발표했다가 오히려 큰 욕을 먹은 대표적인 브랜드가 미국풋볼리그 NFL(National Football League)다. NFL은 커미셔너인 로저 구델의 이름으로 지난달 30일 아래와 같은 메시지를 발표했다. 플로이드가 경찰에 살해당한 지 5일 만이었다.

NFL COMMISSIONER ROGER GOODELL

“우리 NFL 가족은”이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메시지는 조지 플로이드를 비롯해 최근 백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흑인들의 이름을 들면서 애도의 뜻을 표하고 있다. 문제가 된 건 세번째 단락의 내용이다. NFL은 미국 사회 내에서 “우리의 플랫폼이 갖고 있는 파워”를 알고 있고, 이를 통해 선수, 클럽, 파트너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중요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가겠다고 말한 것이다.

사람들은 즉각 이 메시지가 “위선(hypocrisy)”이라고 비난했다. 백인 경찰의 흑인 살해에 항의하는 Black Lives Matter (BLM) 운동에 참여해 경기시작 전 미국국가 연주시간에 무릎꿇기 시위를 벌인 샌프란시스코 포티나이너스(49ers)의 콜린 캐퍼닉을 NFL이 어떻게 취급했는지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백인들 편에 서서 “국가를 모독하는 선수를 해고하라”고 요구했고, 2017년 자유계약 선수가 된 캐퍼닉을 데려가겠다는 구단주가 없어서 결국 그는 NFL 선수경력을 마감해야 했다.

그게 3년 전 일. 그런데 이번 조지 플로이드를 죽인 경찰이 무릎으로 목을 누르는 자세가 캐퍼닉의 항의자세와 비교가 되었고, 이번 시위대와 그에 동조하는 일부 경찰과 주방위군은 바로 그렇게 무릎을 꿇는 것으로 BLM 운동에 대한 동의와 애도를 표했다. 그런 상황에서 캐퍼닉을 조직적으로 내쳤던 NFL이 '우리는 계속해서 노력을 하겠다’는 말을 하니, “당신들이 언제 이 문제로 노력을 했느냐”는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힌 것이다.

2. 나이키의 성공

캐퍼닉이 NFL에서 결국 퇴출당한 후 나이키는 엄청난 모험을 한다. 트럼프와 백인 풋볼팬들의 미움을 받는 캐퍼닉을 자사 모델로 기용한 것. “Believe in something. Even if it means sacrificing everything.”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신념을 가지라는 이 메시지는 캐퍼닉이 커리어를 걸고 했던 BLM 운동와 나이키의 가치관을 일치시키는 시도였고, 글로벌 기업으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실제로 많은 백인들이 자신이 가진 나이키 운동화를 태우는 것으로 화답했고, 미국에서는 나이키 불매운동이 퍼져나갔다.

하지만 나이키는 사과하지 않았다. 그런 불매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중년이상의 백인이었고, 미국은 빠른 속도로 다인종 사회가 되고 있으며, 무엇보다 젊은세대는 압도적인 숫자가 인종다원성과 젠더다양성을 지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모험을 건 시도는 브랜드가 여전히 날카롭고 젊다는 인상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에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이 터지자 가장 먼저 이 문제를 광고에서 제기한 것이 나이키였다는 것은 그래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저스트 두잇(Just Do It)으로 유명한 나이키는 평소의 메시지를 뒤집어 “Don’t Do It”이라는 광고를 만들었다.  “미국에 문제가 없는 것 처럼 생각하지 말라. 인종주의를 못본 척 하지 말라. 죄없는 목숨을 앗아가는 것을 용인하지 말라” 등의 메시지가 검은 화면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이 광고는 폭발적인 반응과 호응을 일으켰다.

For once, Don't Do It l Nike

하지만 NFL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모든 기업들이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섣불리 뛰어들었다가 역효과가 나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하기 때문이다. 광고 속 미묘한 언더톤(Undertone)에 민감한 미국 소비자들과 극에 달한 사회 분위기에서 자칫 실수라도 하는 날에는 이제껏 소셜미디어와 매스미디어에서 쌓아온 이미지를 한 순간에 날려버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사회적인 분위기가 기업으로 하여금 입장을 발표하게 만들기 때문에 기업들은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이 사회적인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3. P&G의 LGBTQ 메시지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꼽히는 예가 생활용품을 만드는 대기업 피앤지(P&G) LGBTQ  캠페인이다. 이 회사는 다른 회사들 보다 앞서 미디어 광고 속에 다원성, 특히 젠더다양성을 포함시키는 노력을 해왔다. 대표적인 예가 트렌스젠더 남성이 처음으로 아버지에게서 면도하는 법을 배우는 모습을 담은 광고영상.

Dad helps transgender son shave face for first time

이 광고는 What is a man?(남자란 무엇인가?)라는 시리즈의 일부라는 것 외에도 특히 성소수자들에게 유난히 적대적인 것으로 알려져있는 흑인 커뮤니티에서 실제 인물을 뽑아 광고를 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핵심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P&G는 이렇게 성소수자들을 미디어에 등장시키는 “media representation”에 각별한 노력을 하고 있다.

  • tokenism n. the practice of making only a perfunctory or symbolic effort to be inclusive to members of minority groups, especially by recruiting a small number of people from underrepresented groups in order to give the appearance of racial or sexual equality within a workforce.

그 첫걸음이 바로 토크니즘(tokenism)을 벗어나는 것이다. 80년대 이후로 미국의 미디어에서는 다양성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나 매체에서 소수인종 한 명을 숙제하듯 형식적으로 한 명 씩 등장시키는 립서비스를 하곤 했는데, 그런 관습이 성소수자를 묘사하는 방식에도 적용되는 모습이 현재 미국 미디어와 홍보 등에 흔히 보인다. P&G는 그런 형식적 서비스를 하지 않고, 기업 내에 성소수자들이 미디어에 포함되는 것을 담당하는 인력을 배치해서 기업이 이 문제에 진정으로 관심이 있고, 장기적으로 추진하는 프로젝트임을 알린다.

이를 설명하는 13분 짜리 영상은 국내 기업들도 자세히 뜯어보고 배워야 할 만큼 훌륭하다:

they will see you: LGBTQ + Visibility in Adversting

우리나라에서는 작년에 오비맥주가 퀴어퍼레이드에 “너의 색깔을 응원해, YASS!”라는 메시지로 퀴어퍼레이드에 참가해서 기업으로서는 처음으로 LGBTQ 캠페인을 시작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앞으로 많은 기업들이 이 행사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일 수 밖에 없고, 더 많은 기업들이 참여할 수록 기독교를 포함한 보수단체들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도 용이해질 것으로 보인다.

4. Best Buy의 솔직한 인정

마지막으로 소개할 기업은 미국 최대의 전자제품 매장 베스트바이(Best Buy). 이 기업의 발표는 조지 플로이드 살해사건으로 촉발된 사회갈등 상황에서 기업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예를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베스트바이는 NFL처럼 트위터로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나이키 처럼 멋진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려놓은 것도 아니고 CEO가 이메일로 보낸 편지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이메일을 본 사람들은 “나는 오늘부터 베스트바이의 팬이 되었다”는 말을 할 만큼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다. (전문은 아래의 링크 참조)

사람들은 세 가지를 지적한다.
첫째, 자신들도 답을 아직 모르고,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까지 해온 일, 립서비스가 아닌, 실제로 커뮤니티에 도움이 되는 일을 이야기하고 얼마나 이 문제에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편지에 베스트바이 웹사이트로 가는 링크도 없고, 유행하는 해시태그도 없고, 세일홍보도 없을 뿐 아니라, 웹사이트에 이 편지를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지도 않았다는 사실이다. 언뜻 보면 평범한 편지처럼 보이지만, 이런 디테일들에서 ‘아, 이 사람은 홍보용으로 이걸 쓴 게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되고, 이 기업이 얼마나 진심인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이런 자세는 앞서 소개한 영상에서 P&G의 담당자도 강조하는 내용이다. 기업이 소비자들에게 이 문제에 진지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면 정말로 진지해야 한다는 것. 어쩌면 모든 홍보에 적용되는 단순한 진리다.

>베스트바이 CEO의 편지 : We Will Do Be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