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선 글에서, 이번 팬데믹을 '역사적 전환점'으로 설명한 존 그레이의 지적을 살펴봤는데요.

오늘은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존 그레이의 언급을 메모해 봅니다. 그가 최근 펴낸 '고양이 철학-고양이와 인생의 의미' 책이 그런 조언의 집합체 였습니다.  먼저 책 말미에 저자가 친절하게 정리한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고양이의 10가지 조언'을 소개합니다. (사실 고양이의 목소리를 빌어 철학자 존 그레이가 던지는 충고로 이해 됩니다)

1) (다른) 인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려 하지 마라.
- 인간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 지지하기 위해 이성을 사용하지만, 자신이 믿는 것이 진실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이성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만약 인간의 불합리가 당신을 좌절시키거나 위험에 빠뜨린다면, 떠나라.

2)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불평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 만약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느낀다면, 당신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를 잘 모르는 것이다. 당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는 일, 그 자체로 당신이 즐기는 일을 하라. 이렇게 산다면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3) 당신의 고통에서 의미를 찾지 마라.
- 당신이 행복하지 않다면, 불행에서 위안을 찾으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불행을 삶의 의미로 만드는 위험을 감수하게 된다. 당신의 고통에 애착을 느끼지 말고, 그런 사람을 피해라.  

4) 타자를 사랑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보다 무관심한 것이 낫다.
- 보편적 사랑이라는 이상보다 더 해로운 이상은 거의 없다. 무관심을 장려하는게 더 낫고, 그것이 친절이 될 것이다.

5) 행복을 쫓는 것에 대해서는 잊어버려라, 그러면 행복을 찾을 것이다.
- 당신은 무엇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지 모르기 때문에 그저 행복을 쫓는다고 찾을 수 없을 것이다. 그 대신 가장 흥미롭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행복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행복해질 것이다.

6)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다.
- 만약 자신의 삶을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끝까지 쓰고 싶은 마음이 들게다. 하지만 당신은 삶이 어떻게 끝날지, 또는 삶이 끝나기 전에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다. 각본을 버리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써지지 않은 삶은 당신이 만들어낼 수 있는 어떤 이야기보다도 더 살 만한 가치가 있다.

7) 많은 소중한 것이 밤에 발견되니, 어둠을 두려워하지 마라.
- 당신은 행동하기 전에 생각하라고 배웠고, 그것은 대개 좋은 조언일 수도 있다. 현재 당신이 느끼는대로 행동하는 것은 당신이 무심코 받아들인 닳아빠진 철학에 순종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가끔은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암시를 따르는 편이 더 낫다. 그것이 당신을 어디로 이끌지 당신은 결코 알 수 없다.

8) 수면의 즐거움을 위해서 자라.
- 자고 일어나서 더 열심히 일하기 위해 자는 것은 비참한 삶의 방식이다. 이득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족을 위해서 자라.

9)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덜 불행해질 목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당신의 고통이 없으면 그의 삶의 이유가 줄어들 것이다. 다른 사람을 위해 산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마라.

10) 좀 더 고양이처럼 사는 법을 배울 수 없다면, '기분 전환'의 인간세계로 돌아가라.
- 고양이처럼 사는 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삶 너머의 어떤 것도 원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위안 없는 삶을 의미하고, 그것은 당신이 감당하기에 버거울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가급적 제의가 많은 구식 종교를 받아들여라. 당신에게 맞는 신앙을 찾을 수 없다면 일상생활에 몰두하라. 낭만적 사랑의 흥분과 실망, 돈과 야망의 추구, 정치의 속임수와 뉴스의 아우성이 곧 어떤 공허감도 사라지게 해줄 것이다.

책을 읽고 나서, 첨엔 '왜 이 10가지 조언을 책의 가장 마지막에 배치했을까' 궁금했습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이게 책 앞머리에 있었으면 뒷부분을 안 읽을거라 생각했지 않았나 짐작이 됩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대중적 눈높이에 맞춰 이렇게 10가지 요약문구 같은 리스티클(List +Article)을 요구한 게 아닐까, 생각도 들었습니다.

제 짐작엔 70대 노학자이자 사상가인 존 그레이는 아마 대중적 글쓰기로 쉽게 풀어서 썼을 겁니다. 하지만 책의 초중반부에는 고대로부터의 철학자가 다수 등장하며 그 사상가들의 논쟁적 이야기도 제법 많다보니 꽤 묵직하고 어렵습니다. 그나마 고양이를 좋아했던 작가나 철학자들의 사례를 통해 그런 얘기가 딱딱하게 들리지 않도록 하는 장치가 있어, 다소 위안이 되더군요.

아무튼 그런 사례와 논쟁들을 그레이의 목소리로 정리하는 내용이 책의 핵심인데, 그걸 스킵하고 위와 같은 리스티클 10개만 읽어선 제대로 이해가 어렵다 싶습니다. 제 나름대로의 해석을 조금 덧붙여 봅니다.  

먼저, 존 그레이가 고양이를 빌어 조언한 10가지 얘기의 바탕에는 (거칠고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사람들이 쓸데없이 고민이 많다'는 비판적 접근이 깔려 있다고 봅니다. 이를테면, 이런 문장들이 꾸준히 등장합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서 벗어남으로써 행복해지려고 노력하는 반면, 고양이는 자기 모습 그대로 행복하다"

"대부분의 인간의 삶은 경련(tics)의 연속이다. 직업과 연애, 여행 그리고 변화하는 철학은 마음속에서 경련을 일으키며,그것은 진정되지 않는다. 파스칼이 말한 것처럼 인간은 정말로 방 안에 조용히 앉아 있는 법을 모른다.
혼자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다른 동물이 있는가? 확실히 어떤 고양이도 그렇지 않을 것이다. 고양이는 자신의 삶 대부분을 만족스러운 고독 속에서 산다."

이와 관련해서, 뉴욕타임스 북 리뷰에서도, 존 그레이가 주장하는 '의식 과잉'을 중요하게 지적합니다.

"존 그레이는 '의식은 과대평가되어 왔다'고 쓰고 있다. 우리는 늘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비참해한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추상적 사고력은 종종 우리를 곤경에 빠뜨린다. 우리는 과학적 연구를 추구하는 유일한 종일 수도 있지만, 의식적으로 대량 학살을 저지른 유일한 종이기도 하다. 고양이는 다르다. 그레이는 '고양이는 사냥을 하거나 짝짓기를 하거나 먹거나 놀지 않을 때 잠을 잔다'면서, '그들에게 지속적인 활동을 강요하는 내면의 고뇌는 없다'고 썼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이 들더군요.
너무 얕은 도식화 같지만,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명제와 "아둥바둥 살 필요 없다"는 또 하나의 일상적 명제가 있는데 그 경계에 서서, 존 그레이는 후자를 지지하는 것 같은데 그렇다면 앞의 명제는 틀렸다는 말인가? 하는 질문이죠.

그가 쓴 다른 대목을 보면 확실히 그렇게 읽힙니다.
"합당한 이유들로 미래의 한 삶의 방식을 다른 방식보다 선호하는 일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주고 싶어 하지 않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좀 더 쉽게 쓴 문장도 있습니다.
"인생은 길지 않다. 인생의 너무 많은 부분을, 그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한 쓸모없는 생각으로 보내서는 안된다."

어떤 의미에선 불교에서 말하는 '내려놓기' 즉, '방하착(放下着)'의 느낌도 듭니다.
책에서는 선불교의 '무심(無心)'을 언급한 대목이 나오더군요.

"고양이가 행동하는 한결 같은 방식을 판단해 보자면, 사심없는 고양이의 상태는 선불교의 ‘무심(No-Mind)’ 상태와 공통점을 가진다. ‘무심’을 이룬 사람은 무심한 것이 아니다. 무심은 번뇌없는 집중을 의미한다.

인간에게 이런 상태는 좀처럼 자연스럽지 않다. 최고의 궁수는 생각을 않고 화살을 쏘는 사람이지만, 이것은 오직 일평생 연습한 후에나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고양이는 무심의 상태를 타고 난다.

우리는 유령처럼 출몰하면서 분열되고 단절된 일생을 사는 반면, 자아가 없는 고양이는 언제나 자기 자신으로 산다."


그런데, 언뜻 반대의 조언도 떠오르더군요.  
이를테면, 제프 베조스의 '후회 덜하기 방법론' 같은 것인데요.

(한글 자막이 달린 영상 : https://www.youtube.com/watch?v=rqt1PyltMLI)

제프 베조스는 젊은 시절 인터넷 사업을 해볼까 하는데, 연봉 많은 안정적 직장을 관두는게 맞을까 하는 혼란스런 상황을 맞았죠. 80세가 됐을 때의 관점에서 생각해보니 '인터넷 사업을 하는게 혹시 실패하더라도 후회가 덜할 것이고 반대의 경우는 시도하지 않았다는 생각 자체가 나를 괴롭힐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후회 덜하기 방법론(Regret Minimization Framework)'은,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나중에 나이들어 이 시점을 되돌아볼 때 어떤 결정이 더 후회가 덜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결정이 쉽다는 방식인데요.

이런 접근은 존 그레이가 지금 말해주는 조언에 비하면, 배치되는 주장으로 이해가 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하네요.^^)

자, 이제 정리해 볼까요?
존 그레이는 거시적으로,
- 코로나와 같은 팬데믹이 역사적 전환점을 만들고 있다고 진단합니다.
- 한 세기 이상 우리 사회가 축적해온 시스템 등 세계관을 파괴하고 있다고 하죠.
- 그리고 사회내 많은 것들이 전염병에 의해 재구성되고 있기에,
-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바뀐 환경'에 얼마나 유연하고 신속하게 적응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개인들도 삶의 방향성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데요.
- 고양이를 통해 배운 인생의 의미로서, '행복을 쫓으려하지 않음으로써 행복해지라'와 '인생은 이야기가 아니니 각본을 버리라'는 조언 등을 제시합니다.
- 특히 '수면의 즐거움을 위해서 자라'는 얘기에서 굳이 내일을 위해 미리 뭔가를 예비하려 하지 말고 현재에 충실하고 만족을 얻도록 노력하라는 메시지가 많이 와 닿습니다. 위험한 팬데믹의 큰 파도 속을 지나고 있다보니, 더 울림이 있는 대목 같습니다.

P.S. (사족) '기분 전환'
조언 10가지 가운데 마지막 조언에서 '기분 전환(Diversion)'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그레이가 책 중간에 일곱페이지에 걸쳐 설명한 개념입니다.

기분전환은 17세기 과학자이자 수학자, 종교사상가였던 블레즈 파스칼이 쓴 글의 핵심주제인데, 파스칼은 이렇게 썼다며 인용합니다.

"기분전환. 죽음과 비참과 무지를 치유할 수 없으므로 인간은 행복해지기 위해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몽테뉴도 기분전환에 대해서 썼다고 덧붙입니다. 파스칼은 그것을 구원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거부한 반면, 몽테뉴는 고통에 대한 자연적 치유법으로서 환영했다고 설명합니다.

아울러, '사랑'에 대해 설명할 때 기분전환이 다시 등장합니다. 인간은 외로움과 지루함 또는 절망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사랑한다고 적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모든 형태에서 번성하는 것이 바로 파스칼이 의미한 '기분 전환'의 욕구라고 말합니다. 사회인에게 있어 기분전환은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고 지루함을 숨기려는 유일한 목적을 위해 타자를 이용하는 기술'이라는게 존 그레이의 풀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