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를 장악한 트루 크라임: 타이거 킹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미국의 대부분의 지역이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사실상 락다운(lockdown)에 들어간 지 4주 째에 접어들고 있다. 사회가 유지되기 위한 필수 서비스가 아닌 모든 비즈니스가 문을 닫고 유치원부터 대학교 까지 각급 학교들도 휴교, 혹은 온라인 강의로 전환한 상황에서 사람들이 찾는 가장 대표적인 서비스는 화상회의와 동영상 스트리밍. 그 중에서도 줌(Zoom)과 넷플릭스는 팬데믹 특수를 맞고 있다.

물론 트래픽이 갑자기 증가하는 바람에 이 업체들이 마냥 좋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줌은 프라이버시 문제가 불거져서 검찰의 조사를 받고 투자자들에게 고소를 당한 상황이고, 넷플릭스는 트래픽 때문에 화질을 떨어뜨린 채로 스트리밍을 하는 중이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사정이야 어쨌든 많은 기업들이 고전을 하는 시기에 손님이 많이 찾는다는 것 자체는 나쁜 일은 아니다. 특히 모바일앱 보다는 랩탑, 데스크탑, TV로 시청하는 사용자가 절대적으로 많은 넷플릭스로서는 경쟁자가 될 수 있는 모바일 전용의 스트리밍 서비스 퀴비(Quibi)가 사람들이 모바일 앱에서 컴퓨터 화면으로 이동하는 시점에 런칭을 하게 되는 바람에 상대적인 이점을 누리고 있다.

그렇다면 팬데믹 때문에 집에만 머물게 된 사람들은 넷플릭스에서 어떤 콘텐츠를 가장 즐겨찾고 있을까? 적어도 북미지역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1위 콘텐츠가 있다. 벌써 2주 넘게 넷플릭스 내에서 스트리밍 회수 1위를 차지하며 큰 화제가 되고 있는 ‘타이거 킹: 무법지대’다.

조 익조틱(Joe Exotic) l 넷플릭스

'Tiger King: Murder, Mayhem, and Madness’라는 원제를 가진 이 작품은 'TV 다큐멘터리, 트루 크라임(true crime)’이라는 장르 분류를 가지고 있다. 극장용 다큐와 구분되는 TV 다큐멘터리 중에서도 트루 크라임은 실제로 일어난 범죄를 다룬 내용으로 유독 서구, 특히 북미지역에 큰 인기를 끌고 있고, 한국에서도 서서히 관심을 받고 있는 장르다. 넷플릭스는 이러한 취향을 잘 알고 꾸준히 트루 크라임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왔고, ‘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인터넷 킬러 사냥,’ ‘살인자 만들기’ ‘이블 지니어스: 누가 피자맨을 죽였나’ 등은 한국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끌었다.

트루 크라임 장르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좀 더 설명하겠지만, ‘타이거 킹은’ 조금 특별한 데가 있다. 그리고 이 특별한 요소들 때문에 현재 북미에서는 타이거 킹 밈(meme)과 코스프레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들

이 다큐멘터리에서도 등장하는 말이지만, 세계자연기금의 전신인 세계야생동물기금(WWF)에 따르면 지구 상에 존재하는 호랑이들 중에서 야생 호랑이 보다 미국의 크고 작은 동물원 및 개인이 사육 중인 호랑이가 더 많다. 하지만 넓은 우리와 적절한 환경을 갖춘 대형 동물원 보다는 작고 대개는 무허가인 동물원에 갇혀 지내는 호랑이가 더 많다. 미국 정부는 멸종위기의 동물의 새끼를 사고 파는 행위를 금지했지만, 암시장에서 여전히 많은 호랑이 새끼들이 거래되고 있다. ‘타이거 킹’은 그렇게 호랑이를 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중심인물은 조 익조틱(Joe Exotic). 본인 스스로 자신을 “총을 들고 뒷머리(mullet)를 기른 게이 레드넥(redneck)”이라고 소개하는 조는 오클라호마 주에서 GW Zoo라는 동물원을 운영하는 아주 특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런 조를 미워하는 적이 등장한다. 비참한 처지에 놓인 대형고양이과 동물들을 구조해서 넓은 환경에서 여생을 보내게 해주는 Big Cat Rescue라는 (사자, 호랑이 등) 단체를 운영하는 캐롤 배스킨(Carole Baskin)이라는 플로리다 주에 사는 여성이다.

편당 약 45분의 길이, 7부작으로 제작된 이 다큐멘터리의 큰 틀은 조 익조틱와 캐롤 배스킨의 싸움이다. 캐롤은 조가 멸종위기의 동물을 비참한 환경에서 기르면서 방문자들에게 큰 돈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게 하는 등 비윤리적인 장사를 한다고 비난하지만, 조는 결국 캐롤도 똑같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으면서 자신을 비난한다고 반박하며 만약 자신의 호랑이들을 뺏으러 오면 죽이겠다고 다짐한다.

캐롤 배스킨(Carol Baskin) l 넷플릭스

제작진은 원래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들이 미국 내에서 팔리는 행태를 다큐멘터리로 만들려고 돌아다니다가 조 익조틱이라는 아주 특이한 인물을 만나는 바람에 다큐멘터리의 방향을 바꿔서 그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를 풀기로 하고 무려 5년 동안을 촬영했다고 한다.

오랜 기간을 촬영한 데다가 조 익조틱이 직접 찍어둔 필름까지 제공받았기 때문에 이 다큐멘터리는 상상을 초월하는 충격적인 장면들이 등장한다. (가령 동물원에서 일하는 직원이 호랑이에게 물려 한 손을 잃은 사고가 난 현장에도 카메라가 찾아간다).

Tiger King Official Trailer

코로나바이러스와 타이거 킹

그런데 이런 특이한 내용의 다큐멘터리가 이 시점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을까? 모두가 궁금하게 생각하는 질문이고, 다양한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우선 근래 들어 북미에서는 다양한 하위문화(subculture)를 다루는 드라마나 다큐멘터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가령 2010년 미국의 히스토리 채널에서는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에서 악어를 사냥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다룬 '스왐프 피플(Swamp People)'이 큰 인기를 끌었다. 전형적인 남부 레드넥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지만 미국 건국 전후로 프랑스계가 내려와서 정착한 루이지애나인들이라서 일상적인 대화에 불어를 함께 사용하고, 썩은 닭고기를 매달아 악어를 잡는,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모르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리얼리티 쇼였다.

넷플릭스에서 두번째 시즌을 선보인 '오자크(Ozark)’는 미주리 주의 오자크 지역의 모습을 다루어서 관심을 끌었고, 캐나다에서 제작한 모큐멘터리(mockumentary: 허구적인 내용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제작한 것) 코미디 시리즈인 '트레일러 파크 보이즈(Trailer Park Boys)’는 북미의 전형적인 빈민촌의 일종인 트레일러 파크에서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려서 큰 인기를 끌었다.

Mary(@maryyyyrosee) l 트위터

‘타이거 킹’은 이런 흐름 속에서 북미관객들이 전혀 모르는 하위문화, 그것도 기상천외하고 예측을 불가하는 내용을 보여주면서 인기를 끌었다고 볼 수 있다. 좋은 작품이 넘쳐나지만 허구적인 스토리에 지루해진 관객들에게는 실화만큼 짜릿한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도 없다는 것이다.

특히 NBA 농구나 메이저리그 야구가 코로나19로 전부 취소되어서 스포츠를 대신해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예측불가의 현실”을 보여줄 콘텐츠를 찾던 오디언스에게 ‘타이거 킹’은 모든 흥행요소들을 다 가지고 있는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 언론의 분석이다.

트루 크라임의 인기

하지만 '타이거 킹'은 리얼리티쇼도, 단순한 문화 다큐멘터리 혹은 자연 다큐멘터리가 아니다. 회가 진행될수록 등장하는 인물들의 어두운 면이 드러나고, 그들의 불법행위, 더 나아가 살인혐의까지 등장하는 트루 크라임 다큐멘터리다.

트루 크라임은 북미의 대표적인 콘텐츠 장르이다. 대형 서점에 가면 트루 크라임 만 모아놓은 서가가 따로 있을 만큼 인기이고, 2014년에 처음 선보여서 온 미국을 흥분시킨 팟캐스트 ’시리얼(Serial)’은 미국에서 자란 한국계 여학생이 살해당한 1999년의 사건이 진범이 아닌 남자친구가 범인으로 잡혀 형을 살고 있다는 제보를 받고 십 여년 만에 사건을 다시 추적해서 재구성하는 트루 크라임물이었다.

특히 트루 크라임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책은 유난히 여성 오디언스에게 인기있다는 것은 미국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 남성들은 액션이 들어가는 트루 크라임물을 좋아한다면 여성들은 범인과 피해자의 심리를 파헤치는 종류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한 심리학자는 여성들이 남성들 보다 범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크고 위험한 상황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 무의식적으로 트루 크라임물에 빠져들게 한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하지만 ‘타이거 킹’이 보여주듯 트루 크라임의 인기는 여성 오디언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비록 말초적인 호기심이라고 해도 “사람들은 대형사고가 난 쪽으로 눈이 가게 되어있기 때문에” 범죄물은 그것이 실화일수록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고, 범죄물을 보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은 같은 범죄의 피해자가 되는 것을 피하고 싶다는 심리로 보게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공포와 미스터리 장르가 만난 뛰어난 스토리텔링이기 때문에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이 모든 분석 중에서 '타이거 킹’의 인기를 가장 잘 설명한 것은 아마 뉴요커의 기사일 듯 하다:

“우리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TV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더 추한(uglier) 것을 보고 싶어한다. (트럼프의 취임 이후) 지난 4년 동안 우리는 나쁜 사람들의 행동에 웃지 않도록 자제해왔다. 따라서 우리가 ‘타이거 킹’을 반기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고, 문화적으로 무감각한 질 낮은 행동을 즐기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의 에고(ego)가 포위된 상황에서 이드(id)의 분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어쨌든 (타이거 킹 덕분에) 아주 잠시나마 우리는 다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우리는 충격을 받으면서도 감사하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