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캐롤은 추수감사절(11월 마지막 목요일) 이후 부터 방송에 나온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그래서 캐롤을 라디오에서 처음 듣게 되는 때는 흔히 블랙프라이데이(Black Friday)라고 부르는, 추수감사절 다음에 오는 금요일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크리스마스 캐롤 방송은 정확하게 크리스마스 (12월 25일) 자정까지 이어지고 끝난다.

아무리 불문율이라고 해도 이런 룰이 만들어진 데에는 이유가 있다. 미국의 각 도시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많은 라디오 방송국들 중 한 곳은 블랙프라이데이~성탄절까지의 기간 동안 "크리스마스 방송국(Christmas station)"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이런 역할을 자처하는 방송국은 이 기간 동안 다른 프로그램을 일절 중단하고 오로지 크리스마스 캐롤만 틀어준다. 중간중간 등장하는 광고를 제외하면 언제 틀어도 수백 곡의 캐롤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온다.

짧은 거리라도 이동할 때는 반드시 차를 타야 하는 미국인의 생활방식을 생각해보면 왜 이런 방송국이 생겨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사람들은 차에 타면 라디오를 켜는 습관을 갖고 있다.
물론 집에서도 라디오를 틀어놓고 캐롤을 듣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깐 운전을 하더라도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기 위해 크리스마스 스테이션에 주파수를 기억시켜두고 캐롤을 듣는 것이다. 방송국은 한 달 동안 정규방송을  못하는 셈이지만 평소에는 찾아오지 않던 사람들이 일제히 주파수를 고정하기 때문에 광고수익은 보장된다.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

미국에는 정말 다양한 캐롤이 존재하지만 아무리 많아도 숫자는 유한하고, 그 정해진 숫자의 캐롤들 중에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다보니 인기있는 곡들은 하루에도 몇 번 씩 듣게 된다.

새로운 캐롤이 혜성같이 등장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도 하지만, 크리스마스라는 명절 특성상 옛날 노래들이 최신곡 보다 좀 더 인기가 있다. 누구나 어린 시절, 젊은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회상하는 즐거움, 향수가 캐롤의 본질에 가깝기 때문이다.

1984년에는 여러 인기가수들이 모여 밴드에이드(Band Aid)라는 이름으로 부른 Do They Know It's Christmas라는 명곡이 탄생했고 지금도 크리스마스 시즌에 방송을 타면서 사람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든다. 이듬해인 1985년에는 왬(Wham!)의 Last Christmas가 나와서 한 편의 드라마 같은 뮤직비디오로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1980년대는 MTV가 등장해서 뮤직비디오의 세상을 연 시대였고, 왬은 이를 가장 잘 이용한 듀오였다). 연속으로 등장한 이 두 곡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음악으로 등극했고 지금도 그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렇다면 1990년대를 대표하는 크리스마스 곡은? 당연히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다. 아니, 1990년대를 대표하는 곡 정도가 아니라, 다른 곡의 추종을 불허하는 크리스마스 캐롤의 황제라고 해도 전혀 지나치지 않다. 2019년 12월에는 3주 연속 미국 빌보드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1994년에 만들어진 곡이 이렇게 다시 인기를 끄는 것은 드물다 못해 신기하기 까지 하다.

더 흥미로운 건, 머라이어 캐리의 이 노래는 1990년대 만해도 지금처럼 폭발적인 인기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1990년대는 머라이어 캐리의 최고 전성기였고, 이 곡도 당연히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Last Christmas 같은 폭발력을 가진 곡은 아니었다. 이 곡이 "크리스마스 원톱"이 된 건 아주 근래의 일이다.

스트리밍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구도

월스트리트저널은 이 현상을 자세하게 분석한 기사팟캐스트를 만들었다. WSJ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렇다. 흔히 "얼굴 예쁘고 가창력 좋은 가수"라는 이미지 때문에 머라이어 캐리가 직접 작곡도 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지만  이 곡은 캐리가 (공동)작곡을 했다.

캐리에 따르면 크리스마스 노래를 만들자는 제안에 처음에는 망설였다고 한다. 1994년이면 머라이어 캐리의 전성기인데, 크리스마스 곡은 전성기를 살짝 넘기 시작한 가수들이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라이어 캐리는 결국 승낙하고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곳은 곧바로 히트작이 되었다.

하지만 이 곡이 크리스마스 때마다 차트를 정복하기 시작한 것은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면서 부터였다. 바로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holiday playlists)의 힘이다. 사용자들이 직접 만드는 플레이리스트와 스트리밍 업체가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는 물론이고, 청취습관과 인기곡을 중심으로 알고리듬이 만들어내는 플레이리스트에도 반드시 들어가는 곡이 'All I Want...'이다. 결국 스트리밍 시대의 네트워크 효과가 머라이어 캐리의 곡을 원톱 크리스마스 캐롤로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행운과 생명력

한 평론가는 4분 짜리 곡인 'All I Want...'의 도입부가 1분이나 되는 점을 지적한다. 곡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등장하는 이 대목은 의도적으로 옛날 노래 같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데, 크리스마스라는 명절이 가지고 있는 추억과 회상에 대한 매력을 살리기 위한 머라이어 캐리의 의도적인 결정이었다. 방금 나왔어도 수 십 년을 들어왔던 것 같은, 그야말로 크리스마스 캐롤의 성공 공식인 것.

게다가 이 곡은 나온 후 10년이 되어가면서 인기가 시들해졌을 무렵 지금은 크리스마스 영화의 클래식이 된 '러브 액츄얼리(Love Actually, 2003)'에 등장하면서 한 번 더 신선도를 회복한다. 그런데 그 해에 마침 애플이 아이튠즈 뮤직스토어를 열면서 사용자들이 앨범을 통째로 사지 않고 한 곡 씩 구매를 할 수 있게 하는 음악산업의 혁명을 일으켰다. 그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 시즌 100위에 간신히 들어가던 'All I Want...'는 이 두 가지 행운을 만나면서 단번에 톱10에 들어섰으며 그렇게 생긴 인기로 크리스마스 클래식이 되면서 2005년에는 크리스마스 시즌 다운로드 1위를 기록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빌보드는 이렇게 다시 인기를 끌게 된 옛날 노래를 Hot 100 리스트에 포함시키지 않고 따로 분류했다. 그러다가 2012년 머라이어 캐리와 쌍벽을 이루던 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갑자기 사망하는 일이 생겼다.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휴스턴의 곡을 일제히 다운로드하고 라디오에서 집중적으로 방송하는 것을 지켜본 빌보드는 이제까지의 방침을 바꿔서 옛날 곡도 일정 기준만 갖추면 최신곡과 같은 리스트에서 순위 경쟁을 하도록 했다.

슬레이트(Slate)에 따르면 2012년에 바뀐 룰에 가장 먼저 혜택을 보게 된 곡이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였다. 그 해 캐리가 (인기가수들과 장난감 악기로 함께 노래를 부르곤 했던) 지미 팰론의 심야 토크쇼에 등장해서 이 곡을 부른 것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리고 앞서 말한대로 2010년대 중반 스트리밍이 대세가 되면서 이 곡은 크리스마스 플레이리스트의 "감초"가 되었고 지금의 원톱의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All I Want...'는 분명 그 자체로 훌륭한 곡이다. 하지만 대중문화는 단순히 작품성만으로 승부할 수 있는 산업이 아니다. 머라이어 캐리의 캐롤은 기술과 대중문화의 변곡점이 생길 때 마다 절묘한 행운을 누렸고, 그 결과 지난 수 십 년 동안의 변화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