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의 아성은 무너질까? Our New World -영화관편

영화 '트롤 월드투어(Trolls World Tour)’는 모든 사람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영화와는 거리가 멀다. 수십 년 전에 미국 어린이들에게 인기있던 못생긴 장난감을 소재로 2016년에 유니버설 스튜디오가 영화로 만들었다가 흥행이 제법 괜찮았고, 그래서 2편을 만든 게 ‘트롤 월드투어’다. 스틸 사진과 포스터를 보면 알겠지만, 그냥 어린아이들을 위한 흔한 영화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뜻하지 않게 영화 스튜디오와 극장들 사이에 전쟁을 촉발시켰다.

영화 ㅣ Dreamworks

전말은 이렇다.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 영화를 4월에 미국 시장에 개봉하기로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이 심각해지면서 미국도 전세계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시하고, 학교와 식당, 운동경기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폐쇄했다. 물론 극장들도 거기에 해당한다. 개봉 영화가 줄줄이 늘어선 상황에서 영화 제작사들은 고민 끝에 많은 영화들, 특히 대작 영화들은 하반기 이후로 개봉을 미루기로 결정했다.

문제는 이 영화, ‘트롤 월드투어.’ 영화관들이 영업을 중단한 시점은 유니버설 스튜디오는 이 영화의 마케팅을 이미 시작한 상태였다. 개봉 직전까지 마케팅에 돈을 쏟아부었는데 개봉을 하지 못하면 마케팅 비용만 날리는 게 아니라, 나중에 개봉할 때 그만큼의 비용을 또 다시 써야 하는 것.

따라서 유니버설은 이 영화를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배급하기로 결정했다. 조건은 유튜브, 구글 플레이, 아마존 프라임 등의 플랫폼에서 20달러를 내면 40시간 동안 볼 수 있다는 것. 이는 가장 비싼 스트리밍 서비스의 한 달 이용료 보다 높은 가격이었지만, 부모가 아이들을 데리고 극장에서 쓰는 비용에 비하면 훨씬 저렴한 비용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온라인으로 개봉한 지 3주 만에 1억 달러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한 것이다. 이 액수는 2016년에 나온 ‘트롤’ 1편이 미국 내에서 벌어들인 총액 보다 더 크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디지털 플랫폼에 공개할 때와 극장에 개봉할 때 계약 조건의 차이다. 미국에서는 극장과 영화 스튜디오가 매출을 50 대 50으로 나눠 가진다. 하지만 물리적인 건물을 유지하고 상영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할 필요가 없는 유튜브나 아마존 프리미엄 같은 디지털 플랫폼의 경우는 매출액의 20% 만을 떼어간다. 같은 매출 기준에서 디지털 개봉에서는 제작사가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는 것이다.

유니버설 CEO의 폭탄 선언

이런 성공에 크게 고무된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CEO 제프 셸Jeff Shell은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서) 극장이 다시 문을 열어도 (극장과 온라인) 두 가지 채널로 개봉할 생각”이라는 말을 했다. 그리고 이 말에 극장주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팬데믹으로 수익이 완전히 끊겨 영화관 산업이 망하게 생긴 상황에 영화 스튜디오가 극장의 수익을 더 줄일 방법을 발표하는 것은 누가 보기에도 심한 행동이었다.

미국의 영화관 체인의 규모

미국 내에서 8천 개가 넘는 스크린을 보유한 최대 영화관 체인인 AMC의 CEO 애덤 애런Adam Aaron은 “유니버설이 우리와 상의도 하지 않고 그런 결정을 했다면 우리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앞으로는 유니버설의 영화를 AMC에서 상영하지 않겠다고 반격에 나섰다. 미국의 극장주 연합회 역시 “극장들은 (스튜디오의 이런 행동을) 절대 잊지 않을 것”이라고 서운함을 분명히 드러냈다.

AMC의 위협이 현실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극장들의 분노에 유니버설의 CEO는 “온라인이 극장을 대체한다기 보다는 보조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며 급히 발언의 의미를 축소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스튜디오가 아무리 온라인으로 수익을 많이 낸다고 해도 당장 극장 개봉이 없이는 장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흔히 "텐트폴(tentpole)"이라고 불리는, 스튜디오의 수익을 주도하는 대작일 수록 그렇다. '분노의 질주' 9편 같은 흥행대작을 유튜브에서 상영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게다가 ‘트롤 월드투어’ 같은 영화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서 원격근무하는 부모들이 어린아이들에게 틀어주기 좋은 영화라는 운도 따라주어서 성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직은 제작사는 영화관이, 영화관은 제작사가 필요하다. 수익을 배분비율(50:50)은 그 공생관계를 대변한다.

하지만 유니버설의 CEO 제프 셸을 아는 사람들은 그가 후퇴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헐리우드를 지휘하기 전까지 미국 최대의 케이블TV사인 컴캐스트(Comcast)에서 경력을 쌓아왔고(컴캐스트는 2013년 NBC 유니버설을 인수했다), 그가 유니버설을 지휘하기 시작하면서 팀을 꾸려서 영화 배급모델을 완전히 바꾸는 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즉, 트롤의 온라인 개봉은 그의 오랜 준비작업에서 나온 실험이지, 우연히 등장한 것이 아니다.

중국에서 일어난 일

미국에서 아동용 영화 ‘트롤 월드투어’로 극장과 영화 스튜디오 사이에 전쟁이 촉발되었다면 중국에서는 <경마(囧媽)> (영문 타이틀: Lost In Russia)라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로 비슷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중년의 남자가 어머니를 모시고 러시아 대륙횡단열차를 타고 여행하는 내용의 이 영화는 원래 중국 최대의 명절인 춘절(春節)에 개봉하려고 준비 중이던 작품이었다. 하지만 잘 알려진대로 중국은 춘절을 앞두고 우한에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졌고, 우한이 봉쇄되는 것은 물론 중국 전역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들어가면서 극장들이 모두 문을 닫아야 했다.

이 영화를 제작한 환시미디어(Huanxi Media)는 재빨리 계획을 수정해서 영화 상영권을 바이트댄스(Bytedance)에 팔기로 했다. 틱톡(TikTok)으로 세계적인 기업으로 초고속 성장 중인 바이트댄스는 미디어 그룹으로서의 위상을 위해서, 그리고 디지털 콘텐츠의 강자임을 보여주기 위한 킬러 롱폼 콘텐츠를 찾고 있었고, 환시미디어와 이해관계가 맞은 것.

바이트댄스가 갖고 있는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무료로 공개된 이 영화는 1월 25-27일 단 3일 동안 무려 6억 명이 시청하는 엄청난 기록을 세우며 대성공을 거뒀다. 이를 위해 바이트댄스가 영화사에 지불한 금액은 미화로 9천 만 달러로, 극장배급사의 미니멈 개런티인 8천 5백만 달러를 훌쩍 넘는 금액이다. 즉,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갈 곳을 잃을 뻔한 춘절 최대의 개봉작을 바이트댄스라는 디지털 플랫폼 파트너를 만나 살려낸 것이다.

영화 <경마(囧媽)> (영문 타이틀: Lost In Russia)

큰 손실이 날 뻔한 영화를 디지털 스트리밍을 통해 흥행작으로 바꿔놓았다는 점에서, 또한 팬데믹 이후의 영화 제작사의 배급 모델을 바꿔 놓을 만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두 사례는 공통점을 가진다. 하지만 강력한 플랫폼이 상영권을 샀다는 점에서 <경마>는 유니버설의 <트롤 월드투어>의 성공과는 성격이 다르다. 게다가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플랫폼들의 대결이다.

BAT에서 BATB로

미국의 테크 대기업에 FAANG(Facebook, Apple, Amazon, Netflix, Google)이 있다면 중국에는 BAT가 있다. 바이두(Baidu), 알리바바(Alibaba), 텐센트(Tencent)를 가리킨다. 그런데 이들 3대 테크기업들은 이미 영상 콘텐츠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다.

이들의 전략은 아마존과 비슷하다. 즉, 영상 콘텐츠가 주력 산업은 아니지만 일종의 로스리더(loss leader: 손해를 보면서 손님을 끌어오는 미끼상품)로 스트리밍을 활용하면서 미래를 위한 판을 까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기업들은 영상 콘텐츠에서 매년 수 억 달러 씩의 손실을 내고 있다. 이들 중에서 콘텐츠 사업을 가장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 바이두의 경우 iQiyi를 통해 10년 째 노력 중이지만 아직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영화 콘텐츠를 확보하기 위한 경쟁을 피하는 비공식적인 약속을 맺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유지하는 이 판을 바이트댄스가 들어오며 깨버린 것이다.

중국경제가 침체기에 빠져있는 상황이지만 바이트댄스는 순항 중이다. 올해 중으로 4만 명의 직원을 추가로 채용할 계획인데, 채용이 완료되면 텐센트 보다 많고, 알리바바와 같은 규모가 된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놀라운 구독자 숫자가 있다. 현재 중국 안팎에서 각각 1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가지고 있는 기업은 애플과 바이트댄스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바이트댄스는 BAT보다 콘텐츠를 잘 아는 미디어 기업이고, 그것을 증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영화 <경마>를 사들여서 무료로 풀어 대히트를 시킨 것이 바로 그걸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국의 온라인 개봉이 오래도록 유지되어 온 극장개봉 중심의 배급모델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깨보려는 제작사들의 시도였다면, 중국에서 일어난 사건은 대형 플랫폼들의 경쟁의 결과로 일어난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그동안 디지털 혁명 앞에서 버텨오던 전통적 영화 배급모델이 깨질 가능성이 팬데믹이라는 시장위기를 통해 드러났다는 점에서는 서로 다르지 않다.

이 글은 아래의 기사들을 참고해서 작성했습니다:
· Aric Jenkins, ‘AMC is at war with Universal Pictures. Is it a fair fight?’ Fortune
· Justin Harper, ‘Will coronavirus lockdowns change the way we watch films?’ BBC
· Eric Schwartzel, ’Trolls World Tour Breaks Digital Records and Charts a New Path for Hollywood,’ Wall Street Journal
· Julia Alexander, Trolls World Tour made nearly $100 million without theaters, but theaters aren’t obsolete, The Verge
· Kate Linebaugh, Ryan Knutson, ‘The Movie That Might Change Hollywood Forever Is…Trolls?’ The Journal podcast
· Rebecca Davis, Patrick Frater, ‘ How China’s Tech Giants Charge Ahead When Coronavirus Shut Down Cinemas,’ Varie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