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필즈상을 수상해 주목받은 허준이 교수(39, 프린스턴대 교수/ 고등과학원 석학교수)가 13일 수상 기념강연을 했습니다. 유튜브에 전체 강의와 해설강연이 올라와 있네요.

허준이교수 강연은 23분20초부터 시작, 40분가량 이어집니다.

어려운 수학용어와 수식도 등장하지만, 의외로(?) 쉬운 단어와 그림도 제법 많이 나오더군요. 무엇보다 대중강연에서 사람들에게 '수학'의 의미에 대해 쉽게 설명하고자 공들여 준비한 마음이 고맙게 다가와 많은 분이 보면 좋겠다 싶었습니다.

허교수는 '수학을 연구하면서 느꼈던 경계와 관계에 대한 생각'을 주제로 이야기 합니다. 실제로 '경계와 관계' 그 2개 단어는 강연 내내 무척 자주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강연을 듣고보니, 그 단어들은 '수학의 의미'를 설명하는데에만 요긴한 게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눈길 끈 대목 몇 장면을 메모해 봤습니다.  

1. 경계란? & 관계란?

허교수는 어릴 때 사전 찾기 놀이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아무 단어나 정의를 찾아보고, 정의에 나오는 단어에서 마음에 드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보고, 계속 그렇게 이어갔다는 거죠.

발표를 준비하면서 제목으로 정한 관계라는 단어의 정의를 찾아봤다 합니다.
관계: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여기서, '관련'이라는 단어를 골라볼게요.
관련: 무엇이 다른 어떤 것과 서로 연결되어 얽혀 있음.

여기서 다시 연결을 골라 찾아보면,
연결: 어떤 대상을 다른 대상과 서로 이어서 맺음.

이런 식으로 단어의 정의를 이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원래의 단어로 되돌아온다고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단어는 유한하기 때문이고, 그래서 항상 원래의 단어로 되돌아오는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얼핏 생각하기엔 정의하려는 단어를 사용해서 스스로를 정의하는 게 엉터리 논리 같지만,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경험적으로, 우리가 가진 언어체계가 정말 훌륭하게 작동하고 이런 언어로 멋진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지 않느냐 강조합니다.

2. "수학은 어떨까요?"

'수학은 몇 개의 공리를 뿌리로 하는 나무처럼 보이지만, 수학 전체를 아울러 보면 나무의 이미지보다는 언어처럼 서로가 서로를 지탱해주는 이미지가 더 알맞다'는 게 허교수의 설명입니다.

수학에선 명제의 증명이 중요한데요. 명제를 증명한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영역에서 알고 싶은 영역으로 유한번의 추론을 거듭하며 화살표를 뻗어나가는 것을 말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학의 증명을 그림으로 표현하면 수많은 명제들이 화살표로 이어져 있는 모양일 것이다, 그래서 명제들의 점과 화살표들이 모인 공간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네요.

여기서, 그가 좋아하는 그림이 한 장 등장 합니다.

우주의 이미지인데요. 빛나는 행성들이 명제들이라면 어떤 명제들은 오밀조밀 아주 가까워서 쉽게 추론해 낼 수 있지만 어떤 것들은 굉장히 멀어서 추론하기 어렵다는 게 바로 이 그림과 비슷한 이치 같다고 연관짓습니다. 마치 명제들의 공간에 거리라는 기하학적인 구조가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설명들과 함께 그는 '우리 인간이 어떤 방식으로 사고하는 지를 강력하게 시사하기 때문에 무척 흥미롭다'면서 예시를 추가합니다.

3. 아이들은 왜 반복해서 "왜?"라고 물어볼까?

'관계의 지도를 탐색한다'는 대목이 무척 와 닿습니다. 그리고 맨처음 설명한 '경계'와 '관계'의 의 의미도 새삼 새롭게 다가오더군요.  

4. 그래서 수학의 가치는?

허교수는 수학의 의미가 인간의 사고를 이해하는 데 있다고 강조합니다.

"수학자들이 궁극적으로 하고자 하는 건 명제 공간의 수많은 관계를 최대한 자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우리가 어떤 식으로 사고하는 지 이해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수학은, 개인적으로는 제 자신의 편견과 한계를 이해해 나가는 과정이고, 더 일반적으로는 우리 인간이라는 종이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고 또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수학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고 새로운 추측들을 발견하는 게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스스로 끊임없이 경계를 벗어나길 요구하고 요구받기 때문이라고 진단합니다. 더불어 순수수학의 중요한 가치 또한 바로 그것이라고 설명하며 강의를 매듭짓습니다.

"순수수학(과 기초과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줄 수 있는 중요한 가치 중 하나는 바로, 우리 스스로가 타고난 편견을 넘어설 기회를 준다는 점일 것입니다."

해설강연은 허준이교수의 석사시절 지도교수인 김영훈 서울대교수께서 해주셨네요. 좀 더 수학적인 내용이 많습니다. 그런데, 장표 2장에서 허준이교수가 정말 대단하구나... 쉽게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수많은 수학자들이 오랜 시간 매달리는 난제들은 한 개도 해결이 쉽지 않은데, 벌써 11개나 해결을 했다고 합니다.

필즈상은 4년마다 시상하는데, 2018년에도 허교수는 후보였다고 하네요. 그리고 2018년 이후에도 수많은 업적을 쌓았다고 합니다.

김영훈교수는 허준이교수의 업적에 대해 이렇게 의미부여를 합니다.

"허교수는 겉보기에 무관해 보이는 여러 수학분야를 연결해주는 이론적 틀을 고안해 냄으로써 수학의 영역을 확장했다."

앞서 허교수가 특강을 하면서 '경계와 관계'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이 떠올랐는데요. 결국 허교수는 어릴 때 사전놀이부터 '관계'에 대한 호기심이 컸는데 이를 연구의 원동력으로 삼아 몰입하면서 세상에 도움되는 큰 성과를 일궈낸 셈이네요. 본인 스스로도 무척 뿌듯하고 보람이 클 듯 합니다.

질의응답세션에서도 인상적인 대목이 하나 있었습니다.

"박사를 받고 나서 클레이 연구재단이라고, 미국의 클레이 가문에서 사비를 들여 만든 수학지원 연구기관에서 5년동안 펠로우를 했어요. 아무런 조건도 없고, 아무 결과를 낼 필요도 없었어요. 하지만 다른 어떤 곳의 포닥보다도 더 좋게 대우해주는 이상적인 환경이었어요. 박사후 5년동안 제 연구가 자리를 잡는데 클레이 재단의 지원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어요.(중략) 수학은 마음이 여유로운 상태에서, 잉여롭게 할 수 있을 때 활짝 필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