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Time에서 표지사진으로 이더리움의 창시자 비탈릭 부테린을 싣고 그의 인터뷰도 담았습니다. 현재 암호화폐 영역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존재죠. Time지가 사진에 덧붙인 타이틀은 "암호화폐의 왕자는 걱정이 많다"였습니다.

부테린은 탈중앙화된 분산형 플랫폼에 대한 뚜렷한 지향점을 갖고 있고 상업적 이해관계를 배격합니다. 사업적 아이디어에 비중을 뒀던 공동창업자들은 모두 떠나가고 이더리움의 철학적 리더로 발돋움한 부테린은 재단까지 설립해 공공프로젝트 지원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습니다. 해커들의 공격에 맞서 커뮤니티 지원을 받으며 하드포크 등의 대응도 해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주목하게 되는 계기들입니다.

부테린이 어떤 인물인지, 그와 이더리움은 어떤 철학적 지향점을 갖고 있는지, 현재 그가 걱정하는 내용은 무엇인지, Time 기사를 번역, 정리해 봤습니다.
The Man Behind Ethereum Is Worried About Crypto’s Future
Vitalik Buterin dreamed up the blockchain technology for uses beyond currency. Now he’s fighting to fix the industry

Key Points


1. 부테린의 걱정은?
- 암호화폐의 부정적 측면이 강해지는 세태를 비판

2. 부테린은 어떤 인물?
- 러시아 컴퓨터과학자 부부 사이에서 태어난 20대(94년생) 개발자.  

3. 이더리움의 철학적 차이점
-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분산형 개방형 플랫폼을 지향


1. 부테린의 걱정

부테린은 암호화폐의 부정적 측면이 커지고 있는데 대한 우려가 크다. 욕심이 과한 투자자들의 위험과 계속 치솟는 거래 수수료, 뻔뻔하게 부를 과시하는 일부 때문에 암호화폐에 대해 대중이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는 점 등에 대한 걱정이다.

그는 지미 팔론, 패리스 힐튼 등 백만장자들에게 디지털 시대의 상징이 되어 100만달러 이상에 거래되고 있는 NFT의 인기 영장류 만화 컬렉션인 'BAYC(Bored Ape Yacht Club)'을 언급하며 "300만달러의 원숭이가 또 다른 형태의 도박이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이 공정한 투표 시스템과, 도시계획, 보편적 기본소득, 공공사업 프로젝트 등 모든 종류의 사회정치적 실험의 발판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는 이 플랫폼이 권위주의 정부에 대한 균형추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지금 이더리움의 혁신적 힘에 대한 그의 비전이 탐욕에 추월당할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을 그는 인정한다. 그래서 그는 할수없이 직접 공적인 역할도 챙기기 시작했다.

그는 "우리가 목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새로 만들어지는 것은 온통 곧바로 이익을 얻기 위한 것들 뿐이다"고 말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부테린의 이런 강력한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더리움이 방향을 이탈하는 것을 막을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 이는 이더리움 자체가 자신의 비전뿐만 아니라 투자자와 무질서한 커뮤니티의 의지에 부응하는 분산형 플랫폼으로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부테린은 이더리움의 정식 리더가 아니다. 그는 누구든 미래에 대해 일방적인 권력을 가지는 걸 근본적으로 거부한다)

이로 인해 부테린은 한정된 소프트 파워 도구에 의존하게 되었다.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인터뷰에 응하고, 연구활동을 하고, (많은 참석자들이 새롭게 얻은 부를 만끽하고 싶어하는) 컨퍼런스에서의 발표 등이다.

"나는 소리를 엄청 많이 지르고 있다. 하지만 가끔씩 그 고함소리가 바람에 날리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한다.(아직 그의 이런 노력들이 가시적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는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뉘앙스)

그의 접근방식이 먹히는지 안 먹히는지는 이더리움이 새로운 디지털중심 시대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미래상, 혹은 이더리움이 단지 금융 투기의 또 다른 수단으로 자리잡는 미래상 두가지 시나리오의 차이로 판가름날 것이다.

2. 부테린은 누구?

그는 1994년 러시아 모스크바 외곽에서 두 명의 컴퓨터 과학자 드미트리 부테린과 나탈리아 아멜린 사이에서 태어났다. 당시 사회는 불안정했다. 외가쪽 조부모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으로 평생 저축한 돈을 잃었다. "소련에서 자라면서, 공산주의는 좋은 것이고, 학교에서 들은 것의 대부분이 선전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라고 아버지 드미트리는 설명한다. "그래서 저는 비탈릭이 관습과 신념에 의문을 제기하기를 원했고, 그는 사상가로서 매우 독립적으로 자랐다."

부테린 가족은 초기에 공동 화장실이 있는 대학 기숙사 방에서 살았다. 일회용 기저귀가 없어서 그의 부모는 비탈릭을 손으로 씻겼다. 아버지 드미트리는 비탈릭이 또래에 비해 문장 표현력이 느렸다고 말한다. 드미트리는 "그의 생각이 너무 빨랐기 때문에 한동안은 자기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걸 어려워했다"고 회상한다.

대신, 비탈릭은 숫자의 명료함에 끌렸다. 4살 때, 그는 부모님의 오래된 IBM 컴퓨터를 물려받아 엑셀 스프레드시트를 가지고 놀기 시작했다. 7살 때, 그는 100자리 이상의 파이를 외울 수 있었고, 수학 방정식을 떠들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12살 때, 그는 Microsoft Office Suite 안에서 코드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부테린 가족은 푸틴이 처음 당선된 2000년, 캐나다 토론토로 이사한다. 조숙했던 비탈릭이 또래와 고립된 성향은 더 심해졌다. 아버지 드미트리는 비탈릭이 캐나다식 교육을 받게 된 걸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비탈릭 스스로는 '외롭고 단절된' 시간이었다고 기억한다.

2011년경 비탈릭은 아버지 드미트리로부터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만들어진 Bitcoin을 소개받는다. 당시 드미트리는 러시아와 미국의 금융시스템 붕괴를 본 뒤, 당국의 통제를 받지 않는 대체 글로벌 자금원 구상에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비탈릭은 곧 잡지 Bitcoin Weekly에 새로운 기술을 탐구하는 기사를 쓰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그는 한 번에 5비트코인을 벌었다. (그때는 약 4달러, 오늘날에는 약 20만 달러의 가치에 육박한다)

비탈릭 부테린은 10대 시절부터 이미 암호 화폐와 기초 기술에 대한 복잡한 생각을 명확한 산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작가임을 증명했다. 18세 때, 그는 Bitcoin Magazine을 공동 창간했고, 토론토와 해외 모두에서 팔로워를 얻으며 주요 필자로 역할했다.

2014년에 부테린을 처음 인터뷰한 콜로라도 대학의 미디어 연구 교수인 Nathan Schneider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전형적인 기술 엔지니어로 생각하지만 그의 핵심역량 중 하나는 관찰과 글쓰기다. 그것은 그가 다른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한 일관된 비전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라고 말한다.

ETHDenver에서 부테린의 발표장면. 잠옷바지 차림이 인상적이다.

3. 이더리움의 철학적 차이점

부테린은 Bitcoin이 만들어진 블록체인 기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이를 그저 화폐기능으로만 사용하는 것은 낭비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는 블록체인이 웹 애플리케이션과 조직, 금융 파생상품, 사전 대출 프로그램, 심지어 유언장 등 모든 종류의 자산을 보호하는 효율적인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들 각각은 중개자가 필요 없이 거래를 수행하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는 코드인 '스마트 컨트랙트'에 의해 운영될 수 있다. 예를 들어, Uber와 같은 승차공유 산업을 보자. 지금처럼 Uber가 중간에서 수익의 일부를 가로채지 않고 승객이 운전기사에게 직접 돈을 보내도록 분산된 형태로 사업구조를 구축할 수 있는 것이다.

2013년 부테린은 대학을 중퇴하고 36페이지 분량의 백서를 작성했다. 이 백서는 프로그래머가 원하는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할 수 있는 새로운 오픈 소스 블록 체인이다. 그는 그것을 Bitcoin 커뮤니티의 친구들에게 보냈고,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곧 전 세계 소수의 프로그래머와 사업가들은 부테린이 성장하는 것을 돕고 싶어했다. 몇 달 뒤, 스위스의 3층짜리 에어비앤비에서 이더리움의 설립자로 알려지게 될 8명의 남자가 모였고 코드를 짜기 시작했다.

이디리움 창업자 8인 가운데 6인의 사진.

그런데 그 속에서도 부테린은 혼자였고 달랐다. 다른 창업자들은 왕좌의 게임을 시청하고 맥주를 즐기는 등 일과 놀이를 병행했지만, 부테린은 혼자 노트북으로 코딩에 열중할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같은 그룹임에도 초기 기술에 대해 상당히 다른 생각을 갖고 있음이 차츰 드러났다. 부테린은 '누구나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분산형 개방형 플랫폼을 원했다. 다른 이들은 이 기술을 사용하여 비즈니스를 창출하고자 했다. 사업 아이디어 중의 하나는 구글과 동등한 암호화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이 암호환경에서는 이더리움이 고객 데이터를 사용하여 타깃 광고를 판매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권력과 직함을 놓고 다툼도 생겼다. 찰스 호킨슨이라는 공동창업자가 자신을 CEO로 임명했다. 부테린은 자신의 직함을, 스타워즈의 드로이드를 칭하는 C-3PO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

이어진 갈등은 부테린을 문화적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몇 달 사이에 그는 코드를 짜고 테크 기사를 쓰는 혼자만의 생활에서, 비대해진 자아와 권력 투쟁에 시달리는 의사결정자의 생활로 변모했다. 그의 이더리움에 대한 비전은 위기에 처했다. "분명한 차이점은 많은 사람들이 돈 버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나에게는 전혀 목표가 아니었다"는 게 부테린의 얘기다.

당시 이더리움의 배포율을 낮게 조정하는 문제, 즉 보다 평등하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포함한 창업자들이 얻을 수 있는 비율에 대해 조정하는 일도 있었다. 그런데 그게 더 큰 충돌을 불러왔다. 부테린은 다른 창업자들이 자신의 순진함을 이용하려 했고, 이더리움 실행방향을 그들의 아이디어로 밀고 나가려 했다고 말한다. "다른 창업자들은 내가 감독기관에 대해 두려워하는 걸 이용했다. 법적으로 비영리 단체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기 때문에 영리 단체를 설립해야 한다고 말했다"는게 그의 회상이다.

긴장이 고조되자, 그룹은 부테린에게 결정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2014년 6월, 그는 이더리움을 사업화하기 위해 애쓰던 두 공동 창업자 호킨슨과 아미르 체트리트(Amir Chetrit)에게 그룹을 떠나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는 이더리움의 인프라를 보호하고 연구개발 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비영리단체인 이더리움 파운데이션(EF, Etherinum Foundation)을 설립했다.

이더리움 파운데이션 로고. (홈페이지)

다른 모든 창업자들은 이후 몇 년에 걸쳐 하나씩 떠나갔다. 그들은 이더리움을 활용하거나 혹은 직접적 경쟁자로서 자신의 프로젝트를 추구해 나갔다. 그들 중 일부는 부테린의 접근방식에 대해 여전히 비판적이다. 현재 자신의 블록체인 Cardano를 이끌고 있는 Hoskinson은 "중앙집중화와 무정부 상태의 이분법에서, 이더리움은 무정부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다. "우리는 일종의 블록 체인 기반 거버넌스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는 중간 토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더리움의 첫 외부 발표장면. (2014년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린 비트코인 컨퍼런스)


창업자들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부테린은 이더리움의 철학적 리더로 떠올랐다. 그는 EF 이사회의 일원이며 업계 트렌드를 형성해 가고 있다. 그는 공개적인 발언으로 시장을 움직이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는 심지어 중국에서 'V God'으로 알려져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권력자가 되길 꺼리며 조심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는 데 능숙하지 않다"라고 EF의 전무이사 아야 미야구치(Aya Miyaguchi)는 말한다. 부테린은 조직 리더의 역할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던 걸 빗대어 '이더리움에서의 초기 몇 년 동안의 나의 저주'라고 부른다.

부테린을 만나보면, 여전히 전형적인 리더십 자질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는 코를 훌쩍이며 말을 더듬고, 뻣뻣하게 걷고, 눈을 마주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옷에도 큰 관심이 없다. 그냥 티셔츠를 걸치거나 친구들이 사준 옷을 주로 입는다. 최근 자신을 외계인 멍청이 같다고 말하는 온라인 댓글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테린과 대화를 나눠보면 생각이 확 바뀐다. 부테린은 매우 웃기고 거의 가식이 없다. 그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개념 중 하나를 발견했을 때 눈빛이 반짝이는 뻔뻔한 괴짜이다.  이더리움이 만물 기계로 설계된 것처럼, 부테린 또한 사회학 이론부터 고급 미적분학과 토지세, 역사까지 모든 분야에 능통하고 많은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는 현재 5번째와 6번째 언어를 배우기 위해 Duolingo를 사용하고 있다) 반말도 하지 않는다. "감정적인 부분에서 일단 그런 식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면, 진화하고 발전하던 영혼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 셈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레딧의 공동 설립자이자 암호화폐 투자자인 알렉시스 오하니안은 부테린과 함께 있으면 월드 와이드 웹의 창시자인 팀 버너스 리 경을 처음 알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 든다고 말한다. "그는 매우 사려 깊고 겸손하다. 그는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가장 강력한 레고를 세계에 선사하고 있다."

부테린은 수년간 이더리움의 분산형 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숱한 고전을 겪고 있다. 첫 번째 도전은 2016년 새로 만들어진 이더리움 기반의 기금 모금 기관인 DAO(Decentralized Autonomous Organization, 탈중앙화 자율조직)가 당시 유통 중인 전체 이더(Ether)의 4% 이상에 달하는 6,000만 달러어치 해킹을 당했을 때였다. 해킹은 암호화폐 커뮤니티가 직면한 시험인 셈이었다. 스마트 계약 기반을 그대로 유지하려면 수천 명의 투자자가 손실을 감수해야 할 것이고, 이는 결국 더 많은 해커들을 부추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하드포크(hardfork, 블록체인의 기능 자체를 수정해 둘로 나누는 것인데 그에 따라 두 버전이 있게 되는 걸 의미)라는 책략을 써서 해킹을 되돌린다면 투자자 손실은 막을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가 대체하려는 기존 금융 시스템처럼 중앙의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모순적 상황도 생긴다.

부테린은 (하드포크라는) 타협을 선택했다. 그는 다른 이더리움 리더들과 상의하고, 하드포크를 옹호하는 블로그 게시물을 작성했다. 포럼과 탄원서 등을 통해 이더리움 커뮤니티가 압도적으로 그의 선택에 찬성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더리움 개발자들이 포크를 만들었을 때, 사용자와 채굴자들은 블록체인의 해킹된 버전을 고수할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압도적으로 새로운 포크 버전을 선택했고, 이더리움은 빠르게 가치를 회복했다.

부테린에게 DAO 해킹은 통치에 대한 분산적 접근의 가능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부테린은 "리더십은 소프트 파워에 훨씬 더 의존해야 하고 하드 파워에 덜 의존해야 하기 때문에 리더들은 공동체의 감정을 잘 살피고 존중해야 한다"고 말한다.

4. 참고사항

- Bitcoin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암호 화폐인 이더리움은, 자금 유동성의 규모면에서 Visa에 필적하는 1조 달러 규모의 생태계를 갖췄다.

- 이더리움은 결제 시스템에서부터 예측 시장, 디지털 스왑 미팅, 의료 연구 허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상품을 구축할 수 있는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일으킨 전쟁에서 암호 화폐는 거의 즉각적으로 우크라이나 저항의 도구가 되었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비정부기구(NGO)를 위해 침공 첫 3주 동안 1억 달러 이상의 암호화폐가 조달됐다.

- 부테린도 구호 활동에 수십만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푸틴의 침략 결정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며 행동에 나섰다. 부테린은 3월 14일 TIME에 보낸 이메일에서 "지난 3주간의 상황에서 은빛 희망은 암호화폐의 궁극적인 목표가 원숭이의 수백만 달러짜리 사진으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세계에서 의미 있는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라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상기시켰다는 점이다"라고 썼다.

- 그와 이더리움 파운데이션(EF, 약 10억 달러 상당의 Ether를 보유하고 있음)은 에코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2019년 770만 달러규모였던 이더리움 기반 프로젝트에  2021년 추가로 2,700만 달러를 스마트 계약 개발자, 교육 콘퍼런스 등 수혜자에게 나눠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