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금 러시아에서는...

- 지금 러시아의 평범한 TV 시청자들(국민)은 전쟁에 대해 뭘 알고 있을까요?

"러시아 국민 대부분은 우크라이나 침공사태의 실상을 모릅니다. 정부는 전쟁이 없다고 규정했기에 전쟁이나 침략으로 칭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상황입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이 최근 러시아를 다녀온 마샤 게센(55, 러시안-아메리칸 저널리스트)을 인터뷰한 질의응답의 한 대목입니다. 마샤 게센은 보통의 러시아 TV시청자들(일반 국민)은 '평화 유지를 위한 특별 군사작전'으로 알고 있다고 말합니다. 언론에서 그렇게 보도하고 있기 때문이죠. 러시아에선 페이스북이 차단됐고, 독립언론의 웹 접속을 차단하면서 관영매체들만 운영되는 현실이라고 하네요. 물론, VPN(가상 사설망)을 활용하거나 해서 그런 차단막을 뚫고 해외정보를 접하며 실상을 알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극히 제한적이라고 합니다.

아울러, 게센은 미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경유한 프랑스의 공항에서는 전쟁소식을 연신 전하는 수많은 방송화면 등 정반대의 풍경을 마주했다고 말합니다. 제국을 꿈꾸는 침략자이자 독재자가 통제하는 러시아와 서구권의 대조적인 뉴스 환경 차이에 대해 강조한 셈인데요. 사실 이런 대조적 장면들이 그리 낯설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1980년 대한민국의 광주, 최근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 그리고 중국까지... 꾸준히 목격하게 되는 현실의 풍경이니까요.

2. 뉴스 환경의 정상성(Normalcy in the News Environment)

그런데 에즈라 클라인은 이러한 뉴스환경의 대조적인 차이를 거론하면서 '뉴스 환경의 정상성(Normalcy in the News Environment)'이라는 표현을 썼더군요. 이 문구 속에서 'Normalcy'란 단어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고 여러 생각이 꼬리를 물게 됐습니다. 정상의 상태를 뜻하는 Normal의 명사형이라 '정상성'으로 번역했는데요. 찾아보니 'Normality'란 단어가 좀 더 일반적으로 쓰이는 듯 한데, (영국에선 거의 안 쓰지만) 미국에선 29대 대통령 워렌 하딩(Warren Harding, 재임 1921-1923)이 'Return to Normalcy'란 캠페인 슬로건을 쓰면서 대중화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1차 세계대전과 스페인독감으로 지친 미국인들에게 하딩 후보의 "정상으로 돌아가자"는 공약이 잘 먹혀들었다네요. 하지만 하딩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권력집단이 허수아비처럼 써먹은 후보였고 워낙 무능하다보니 재임중 정책 질의에 제대로 답도 못했고 금주법 시대에 술과 도박 스캔들까지 일으켰다고 합니다. 결국 'Normalcy'(정상성)로 인기를 끌고 당선됐지만, 미국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악의 인물로 손꼽히는 상황이 됐다 합니다. 그만큼 '정상화'라는 과제는 구호를 외친다고 극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대단한 준비와 꾸준한 노력 속에서 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습니다.

다시 뉴스환경 이야기로 돌아와서, 요즘 우리 주변의 뉴스환경은 '정상성'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을까를 생각해 봅니다. 전쟁을 감추며 언론을 통제하고 있는 러시아의 극단적 사례와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는 뉴스환경 또한 충분히 건강하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상황임은 다들 공감하실 듯 합니다. 몇년전부터 '가짜 뉴스'와 '팩트체크'란 표현을 쓰는 일이 부쩍 늘어났죠. 엄밀하게는 '허위 조작 정보'로 쓰는 게 맞겠지만 워낙에 직관적이다보니 다들 '가짜뉴스'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자주 쓰고 있는데요. 그만큼 뉴스 환경이 비정상적이라는 걸 반증하는 상황 같습니다.

3. 한국 사회에서의 두 가지 뉴스 환경

현 시점에서 우리를 둘러싼 뉴스 환경은 두 갈래로 압축해서 살펴볼 수 있겠습니다. 먼저 전통매체 환경입니다. 흔히 Legacy로 부르는 신문과 방송(종편 포함) 등 전통적 언론사를 통해 생산되는 뉴스입니다. 이들 매체는 한국 사회에서 과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으며 여론 형성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인터넷매체 등 뉴스 생산자도 일부 포함되지만 포털과 유튜브 등 주요한 플랫폼들이 유통자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뉴미디어 환경입니다.

사회적으로 디지털 전환의 흐름 속에서 두 가지 미디어환경은 서로 대립적 전선을 형성하는 한편 동시에 상호 협력적 공생관계를 유지하는, 이중적이고 과도기적인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산업적 관점에서 볼 때 전통매체 진영은 하향세이고 뉴미디어 진영은 성장세를 거듭하며 치열한 각축전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이는 이용자 접점이 뉴미디어 중심으로 변화하면서 미디어의 주된 수익원인 광고자본의 이동이 맞물려 촉발됐으며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하지만 당장은 생산과 유통의 각자 우위를 바탕으로 협력적 관계를 통해 공생관계를 공고하게 유지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입니다.

전통매체 환경에 대해 논의할 때, 흔히 '기울어진 운동장'이 자주 거론되고 그 연장선상에서 최근에는 '진보 종편' 논의까지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은 진영논리를 강화할 뿐이라는 비판 또한 거셉니다. 이와 관련해서 유시민작가는 3월초 MBC의 대선토론에 출연해 전통적인 언론산업에 대한 불신을 토로하며 뉴미디어를 활용한 새로운 언론환경 조성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4. 뉴미디어 뉴스환경의 건강성 회복

이 글에서 사회적 집중과 논의 확대를 촉구하고픈 대목은 뉴미디어 뉴스환경에서의 건강성 회복 이슈입니다. 앞서 언급한 '디지털 전환'의 흐름과 현실에서의 '공생관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뉴스 환경에 있어 플랫폼의 역할은 계속 커져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비대해진 영향력에 비해 플랫폼의 운영정책은 아직 취약하고 미흡한 대목이 많은데다 불투명합니다. 물론, 일방적으로 플랫폼이 잘못됐다는 단정은 곤란합니다. 하지만 2018년2021년 페이스북의 내부고발자 사태와 유튜브의 운영정책에 대한 모질라재단의 비판적 보고서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거대 플랫폼들이 상업적 이해관계를 우선하고 있는 것은 합리적 의심을 넘어 현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최근 접한 책 '소셜 온난화'에서는 플랫폼을 향한 동일한 문제제기를 '온난화 현상'으로 풀이하면서 심각성을 고발하고 있는데요. 뉴스 환경의 정상화 이슈와 궤를 같이하는 문제제기로 읽힙니다. 책 리뷰글에 정리했듯 저자인 찰스 아서는 플랫폼의 상업주의로 허위정보가 더 빨리 퍼져 분노가 무기로 쓰이게 되며 결과적으로 양극화된 분노에 압도되게 마련이라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소셜'이 '온난화'되면서, '기후 위기' 못지 않은 '사회 위기'를 불러왔다는 게 그의 주장입니다.

해결책에 대한 제언을 되짚어봅니다. 플랫폼의 투명성을 제고하도록 사회적 압박을 가하면서 자율규제를 확장하는 것과 이용자 스스로 유의하자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된 내용입니다. 저자가 좀 더 강조한 대목은 직접적인 공적 규제방안인데요. 플랫폼들이 관리감독에 투여하는 예산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니 이를 강화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독일에서 네트워크 시행법을 통해 플랫폼이 혐오발언과 불법콘텐츠를 일정시간내 삭제하지 않으면 벌금을 물도록 강제한 사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게시물에 대한 플랫폼의 면책조항인 통신품위법 230조를 손봐서 플랫폼이 해로운 콘텐츠를 알고리듬으로 증폭시킬 경우 이용자가 해당 플랫폼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도 곁들입니다.

5. 보태는 말

앞서 소개한 이즈라 클라인의 마샤 게센 인터뷰 중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  시간이 지날수록 서로 다른 이야기들 사이의 모순이 더 깊어질텐데요. 즉, 푸틴의 언론통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면 러시아 대중의 생각은 바뀔까요?

"전체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겠지만 사실 이를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생각을 잘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그들의 진짜 생각을 알 수 없습니다. 결국 대중적 의견형성 가능성이 없는 사회에서 여론이 생기는 것은 대단히 갑작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옛 소련 말기에 그러했지요."

'사람들이 생각을 잘 못하게 만든다'는 대목이 자꾸 걸립니다. 소셜미디어를 거론할 때 자주 등장하는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란 말이 시사하듯, 우리가 오염된 뉴스 환경을 맴돈다면 합리적 사고를 할 힘 또한 마찬가지로 계속 약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양극화된 분노'가 부쩍 늘어나면서 결과적으로 건강한 여론 형성을 억누르고 사회통합은 멀어질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뉴스환경이 건강성을 잃어간다면, 이는 마치 '기후 위기'처럼 '뉴스환경 위기'가 커다란 재난으로 우리 앞에 마주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잃은 건강은 회복하는데 훨씬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게 마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