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진보언론 '가디언'이 2019년에 몇개의 용어 표현을 바꾼다고 기사로 밝힌 게 있다. Climate Change(기후 변화)를 Climate Crisis(기후 위기)로, Global Warming(지구 온난화)을 Global Heating(지구 가열화)으로 바꿔 부르기로 하고 스타일 북을 개정했다는 내용이다. 이때 '가디언'은 “기후위기와 연관된 문제들은 체계적이며 근본적인 사회변화를 요구한다”면서 “우리는 미래 세대의 편에 서고, 인류보존을 위해 두려움 없이 나서는 개인과 공동체를 지속적으로 보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소셜 온난화(Social Warming)' 책을 접하고, 위 기사가 떠올랐다. 2가지 대목에서 그 문제의식이 유효하게 연결된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첫번째 문제의식은 위기로 치닫고 있는 거대 소셜미디어 플랫폼들의 문제점을 생생하게 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선 '체계적이고 근본적인 사회적 인식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촉구하는 것이다.

소셜온난화 (찰스 아서 지음, 이승연 옮김/ 위즈덤하우스 펴냄)

그래서, 책의 핵심 내용 또한 크게 2가지로 압축되는 듯 하다.
1) 왜 온난화(Warming)인가? 그리고, 2) 대안은 무엇인가?

하나씩 살펴보자.

소셜은 왜 온난화됐을까?

먼저 저자를 확인해본다. 찰스 아서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이다. '가디언'의 테크담당 기자로 10년 가량 재직한 것을 포함해 30년 남짓 과학과 Tech 분야를 취재했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 주요 기술기업의 성장기를 밀착해서 들여다본 인물인 셈이다.

10여년전 그는 이런 취재경험을 토대로 '디지털 워(Digital War)'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 책은 검색과 음원, 스마트폰, 태블릿 등을 둘러싸고 기술기업들이 벌이는 치열한 전쟁을 기록하고 있다. 이렇게 실리콘밸리 테크 기업의 이면을 전장을 들여다보듯 묘사했지만 그 책의 지향점은 미래를 향해 있었고 Tech 기업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긍정적 대상으로 읽힌다.

그런데 그랬던 그가 시간이 흐른 뒤 이번에는 '고발장' 같은 책을 내놓은 것이다. 그리고 그 고발의 핵심은 '소셜 온난화'이다. 책 속에는 몇가지 '역사적' 사례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건들을 통해 기대감이 실망감, 다시 분노로 바뀌는 게 읽힌다.

거칠게 요약하자면, 기대감은 2011년 '아랍의 봄' 사건으로 보인다. 민주화의 물결을 일으킨 디지털 광장에 환호하던 무렵이다. 그럼 실망과 분노를 던진 사건은? 2016년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던 시기의 미국 대선을 둘러싼 페이스북 이슈를 필두로 세계 각지에서 계속적으로 터져나온 소셜 플랫폼들에서 다양한 사건들이다. 이는 소위 '가짜뉴스'와 '확증편향'으로 대변되는 일련의 사건들. 특히 고약한 것은 2021년 페이스북 내부고발건과 유튜브를 겨냥한 모질라재단 보고서 등에서 보여지듯, 디지털 플랫폼들이 수익창출이라는 상업적 이해관계에만 골몰하는 점이다. 결국 이런 흐름 때문에 '소셜'은 '온난화'됐고, '기후 위기' 못지 않은 '사회 위기'를 불러왔다고 보는 것이다.

소셜의 온도가 올라가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책에서는 이렇게 기술한다.

불화와 의견 충돌이 더 쉬위지고 잦아진다. 거짓정보와 허위정보가 더 빠르게 퍼져나가고 분노가 무기로 쓰이고, 국가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전체 국민보다 소셜미디어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이 내놓은 정책에 어떻게 반응할지에 휘둘리고 있다. 우리는 중요한 것, 흥미로운 것을 놓치지나 않을까 하는 은근한 불안감에 이끌려 소셜 플랫폼으로 되돌아 온다. 그리고 화면을 스크롤하기 시작하면 교묘하게 진화한 편가르기 진술 때문에 양극하된 분노에 압도되고 만다.

그러면, 대안은 무엇일까?

저자는 몇가지 개선방안과 규제방안을 단계적으로 제시한다.
(큰 골자는 거대화된 소셜네트워크를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 핵심으로 보인다)

먼저 해결책 이전에 문제의 분류를 따져볼 가치가 있다고 하면서 이용자 스스로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이 문제는 지구온난화와 마찬가지로, 규모가 거대할 뿐 아니라 동시에 이뤄지는 수십억개의 사소한 개인적인 선택으로 발생하는가? 우리의 일상적 행동을 바꾸라고 요구하는 대책은 너무 광범위해서 고려해보기 어렵다. 소셜온난화를 바로잡으려면 우리 모두 소셜네트워크를 덜 사용하도록 유념해야 하고, 그들이 분노를 불러일으킨다는 거 의식해야 하고, 거기에 저항해야 한다는 뜻이다"  


소셜의 규모는 방대하다.
매일 약 18억명이 페이스북에 로그인한다. 인스타그램과 왓츠앱 사용자까지 더하면 한 달에 총 사용자수는 중복을 제외하고도 30억명 이상이다. 트위터에는 전 세계에서 1억9,000만명이 접속한다. 유튜브에서는 매일 약 50억편의 동영상이 시청되며 한달동안 20억명 이상이 방문한다. 이렇게 엄청난 규모임에도 불구하고 이들 회사들은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면서 관리감독에 투여하는 예산과 인력은 턱없이 적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규제를 통한 관리책임 강화

그리고, 독일의 사례를 들어 입법자들이 나서 직접적 규제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2015년, 독일에서 소셜미디어 기업들은 자율규제방안의 일환으로 자사 플랫폼에서 스물네시간 이내로 혐오발언을 없애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후 2017년 6월 독일 정보는 네트워크시행법을 통과시켜 페이스북 커뮤니티 가이드가 아니라 독일 형법 기준으로 독일 네트워크 상에서 무엇을 허용할지 정했다. 그리하여 스물네시간 내로 혐오발언을 삭제하지 못하고 일주일 내에 불법 콘텐츠를 삭제하지 못하면, 최고 5,000만유로(약 670억원)까지 벌금을 물릴 수 있게 되었다. 1년도 채 지나지 않아서 페이스북 관리자 가운데 6분의1이 독일에서 일하고 있었다.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이 자신의 창조물을 제어할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지만, 소셜플랫폼들은 사용자들의 활동을 충분히 관리한 적이 없었고 그럴 역량이 되지 않는다고 진단한다. 그들은 최대한 빠르게 최대한 커지는 걸 목표로 했다는 것이다. 관련해서 몇몇 사례가 등장한다. 성장을 우선하는 저커버그는 늘 사회적 압박에는 수세적으로 임하고 있고 스스로의 '진화했다'고 말하면서 이해가 높아질 때만 운영정책의 변화가 생겨나는 등의 모습이라든지, 인스타그램 공동창업자인 케빈 시스트롬이 플랫폼의 건강성을 중요시하며 '좋아요' 표시를 가리는 등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었는데, 그가 축출된 후 다시 되돌아온 사례도 제시된다.


아울러, 통신품위법 230조의 개정도 제안한다.

230조는 게시물에 대한 플랫폼들의 즉각적인 책임을 면제해주면서 그들이 원하는대로 게시물을 관리할 수 있게 해주는 조항으로 테크 기업들의 급성장을 견인한 중요한 토대로 평가받는다.

플랫폼이 해로운 콘텐츠를 알고리듬으로 증폭시키는데 대해 사람들이 해당 플랫폼을 고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주장의 골자다. 규제압박의 정당성 관련해서는 여론조사 결과도 소개한다. 2020년 10월 미국에서 여론조사한 바에 따르면, "테크 대기업의 권한을 줄이고 경쟁과 혁신을 늘리기 위해 정부 주도로 이들이 분할되는 것을 지지하겠다"는 응답이 답변자의 74%에 달했다는 것이다.

책의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우리는 본성을 바꿀 수 없다. 하지만 도구를 바꿀 수는 있다. 소셜온난화가 진행된 정도를 고려하면, 우리가 의존해왔던 고장 난 도구를 재설계하고 개조해야 할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