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의 미개척지, 오디오

미국에서 대학생들도 슬슬 휴대폰을 들고 다니기 시작하던 2000년 대 초(물론 스마트폰이 나오기 한참 전이다). 당시 미국 내 주요 통신사 중 3, 4위 정도를 하던 스프린트(Sprint)가 무전기 기능을 폰에  넣은 '푸쉬투토크(push to talk)'라는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기능은 당시 미국 남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제법 인기를 끌었다. 가까운 친구들이 일일이 전화를 걸고 받을 필요없이 즉각적으로 대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전기처럼 상대방의 스피커폰을 통해 큰 소리로 들리기 때문에 수업 중이나 도서관에서 울리면 난감하겠지만, 상대방이 지금 뭘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는 친한 친구들끼리 하는 거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 듯 했다.

2000년대 초, 무전기 기능이 내장되었던 스프린트 폰

그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런 기능이 필요할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공사장에서 중장비를 사용해 작업을 하는 사람들 처럼 끊임없이 연결되어 있어야 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그냥 당시 인기를 끌던 '프렌즈(Friends)' 속 등장인물들 처럼 그저 같이 몰려다니는 친구들 사이에 무슨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렇게 바로 연락을 해야 하느냐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대학생들 사이에 중요했던 건 단순히 상대방의 빠른 응답이 아니라, "항상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센트럴퍼크(Central Perk) 카페에 가면 항상 친구들을 만날 수 있음을 알고 있던 여섯 명의 드라마 속 친구들처럼, 그들은 "내 친구들이 어디있든지 내가 말을 하는 순간 바로 들을 수 있다"는 그 연결감을 원했던 것 같다.

함께 연결되는 제3의 공간 -  디스코드(Discord)

디스코드(Discord)

온라인 게이머들은 헤드셋을 끼고 친구들과 혹은 온라인에서 만난 상대와 큰 소리로 대화를 하면서 게임을 즐긴다. 장난스럽게 (혹은 진지하게) 상대방을 깔보거나 욕하는 "트래쉬토크(trash talk)"를 하기도 하지만, 게임의 진행상 같은 팀원들과의 커뮤니케이션 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경우 통화에 지체가 발생하면 안되기 때문에 게이머들은 레이턴시(latency, 지체)를 최소화해주는 소통수단을 찾았다. 그들이 찾은 최고의 서비스가 바로 디스코드(Discord)다.

이렇게 처음에는 게임을 할 때 사용하던 디스코드가 자연스럽게 새로운 서비스로 진화하기 시작했다. 워낙 통화에 지체가 없고 깔끔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다보니 사용자들은 게임이 아닌 대화를 할 때도 디스코드를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일이 전화를 걸어서 대화가 가능한지 묻고 이야기를 시작하는 게 아니라 특정 대화방에 들어와 있는 친구들에게 바로 말을 거는 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디스코드가 하나의 거실처럼 느껴진다고 한다. 각자 자기 방에 있다가 거실로 가서 그 시간에 거기에 있는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듯하다는 것이다.

디스코드(Discord) 설명 영상

그들이 원하는 건 2000년대 초에 전화기를 무전기 처럼 사용하던 대학생들과 다르지 않다. 반드시 이야기해야 할 주제나 이유가 없어도 그냥 한 공간에 있다는 연결감이다. 다만 그 공간은 가상의 공간이고, 그 중에서도 소리만 들리는 '오디오 룸'이다. 그리고 이 가상의 오디오 룸은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제3의 공간”에 가깝다. 집/가정이 제1의 공간이고, 일터가 제2의 공간이라면 제3의 공간은 공공장소이지만 일이 아닌 편안한 사교의 장소, 휴식의 장소다.

디스코드의 대화방을 제3의 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이유는 여러 사람들에게 공개된 장소이지만, 거기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들은 불특정 다수가 아니기 때문이고, 상대방이 언제 답할지 모르는 단톡방이나 단체 이메일과 달리 즉각적으로 대화가 가능한 동기화된 소통(synchronized communication)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기에서 인터넷 오디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소셜오디오, Live 라디오플랫폼 - 클럽하우스(Clubhouse)

인터넷과 모바일 혁명에서 오디오는 큰 변화를 겪은 듯 보이지만 엄밀하게 말하면 파일 다운로드라는 형태 외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음악을 다운로드하거나 팟캐스트를 듣고 스트리밍을 하는 것은 소스(source)에서 청취자의 귀로 전달되는 '방식'의 변화일 뿐 일방향 전달과 수동적인 청취라는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만약 디스코드를 거실처럼, 제3의 공간처럼 이용하고 싶다면? 그래서 그 기능을 소셜 플랫폼으로 발전시키면? 라이브 라디오 플랫폼인 클럽하우스(Clubhouse)가 나온다.

클럽하우스(Clubhouse)

전혀 모르는 사람들과 같은 주제를 두고 이야기하는 인터넷 포럼, 혹은 토론방을 생각하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다만 매개체가 텍스트가 아닌 오디오이고, 대화는 실시간으로 일어난다는 점이 다르다. 토론방에서 다른 사람의 의견을 읽기만 하는 사람들처럼 일어나는 대화를 듣기만 할 수도 있다. 물론 자신이 관심과 열정을 가진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클럽하우스에서 오디언스를 찾아서 그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

현재 베타 서비스 중이라서 가입하기가 자유롭지는 않지만 가입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텍스트로 대화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경험이라는 것이다.

인터넷 라디오의 개념을 확대하다 - 카피쉬(Capiche)

그런데 만약 클럽하우스에서 토론장의 기능보다 한 명의 발언자/스피커의 역할을 키우고 다른 사람들은 단지 실시간으로 듣기만 한다면? 그건 라디오와 다를 바 없다. (실시간이 아니라면 팟캐스트가 된다). 하지만 실시간으로 듣고 있던 청취자가 진행자와 대화를 요청할 수 있다면? 그래서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콜인(call-in, 청취자의 전화를 받는) 라디오가 되고, 오디오를 통한 강의, 강연 등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라이브 오디오 쇼 플랫폼을 자처하는 카피쉬(Capiche)가 "카피쉬 FM"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것은 클럽하우스와 달리 스스로를 새로운 개념의 라디오로 자리매김을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카피쉬(Capiche) FM (https://capiche.fm/)

사실 카피쉬나 클럽하우스, 디스코드 모두 대화에 참여할 수 있는 실시간 오디오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기능적으로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지향점은 조금씩 다르고 거기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카피쉬의 경우 유료 뉴스레터인 서브스택Substack처럼 구독이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이들 서비스가 전통적인 오디오의 기능에서 비로소 벗어난 진정한 인터넷 오디오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는 것이고, 기능의 한 가운데 소셜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결국 텍스트를 오디오로 옮겨놓은 것 뿐 아닐까? 이에 대해 카피쉬 CEO인 오스틴 피터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오디오에는 알 수 없는 친밀함(intimacy)이 있고, 그게 단순히 미디엄(Medium) 같은 데서 텍스트를 읽는 것과  다른 점이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그런데 그게 매력인 동시에 잠재적으로 큰 문제이기도 하죠." 온라인 댓글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안다면 그걸 실제 사람들의 목소리로, 실시간으로 듣는다고 생각해보면 이 문제가 오디오 플랫폼에게 얼마나 큰 골칫거리가 될지 상상 가능하다.

물론 인터넷에서 해결하기 힘든 문제는 그 문제를 해결한 기업이 경쟁자들을 막아내는 해자(moat)가 된다. 누가 그걸 먼저 해내는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