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가수들과 미국 국가

대중문화계의 수퍼스타인 레이디 가가는 1월 20일에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식에서 미국의 국가를 불러 행사를 지켜보던 전세계인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미국에서 어쩌면 가장 중요한 행사에 인기 가수를 초청하는 건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또 다른 정상급 가수 비욘세는 오바마 대통령의 2013년 (재선) 취임식 때 등장해서 국가를 불렀고, 이번 취임식 때는 레이디 가가 외에도 제니퍼 로페즈, 가스 브룩스가 나와서 축하 공연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중 가수가 취임식에 나와서 국가를 부르는 일은 정례화된 게 아니다. 특히 공화당과 민주당, 어느 쪽 대통령의 취임식이냐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지는 데 리처드 닉슨,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조지 W. 부시,  공화당 출신 대통령들은 대중 가수가 아닌 군악대나 군인이 국가를 연주하거나 부르게 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존 F. 케네디나 빌 클린턴, 버락 오바마 같은 민주당 대통령은 유명 가수들을 초청하는 경향이 좀 더 눈에 띈다. (계관시인에게 행사의 일환으로 창작시를 낭송하게 하는 것도 민주당 대통령들이 선호한다).

조 바이든 대통령,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의 취임식에서 국가를 부른 레이디가가

도널드 트럼프는 조금 예외여서 공화당 대통령이었지만 유명 가수들에게 국가 및 공연을 부탁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많은 연예인들이 트럼프와 엮이고 싶어 하지 않아 거절했다고 전해진다. 결국 트럼프의 2017년 취임식 국가는 '아메리카 갓 탤런트'로 미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재키 이뱅코가 불렀는데, 이 일로 인해 소셜미디어 등에서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다.

레이디 가가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바이든이 트럼프를 상대로 선거운동을 벌이던 작년에 이미 바이든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고 유세장에서 노래를 부르는 등 전폭적인 지지 활동을 했고, 바이든 측은 그에 대한 답례로 레이디 가가에게 취임식 국가를 부탁한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 vs. 수퍼볼

레이디 가가가 대규모 행사에서 국가를 부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16년 제50회 수퍼볼 행사 때 반짝이는 붉은 정장을 입고 나와서 국가를 불렀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연주하는 일이 잦은 대통령 취임식 국가와 달리 수퍼볼에서의 국가 부르기는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가수에게 돌아가는 영광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퍼볼과 취임식 모두에서 국가를 부른 것은 대단한 일이다.

제 50회 수퍼볼에서 국가를 부른 레이디가가

하지만 그 두 행사에서 모두 국가를 부른 첫 가수는 비욘세다. 앞서 이야기한 2013년 취임식은 물론 2004년 수퍼볼에서 이미 국가를 불렀다. 그러니까 이 기록은 비욘세와 레이디 가가만 갖고 있다는 셈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가수들이 같은 미국의 국가를 부르면서도 두 행사에서 전혀 다른 편곡과 창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이다. 먼저 비욘세가 부른 두 번의 국가를 들어보자.

2004년 수퍼볼에서의 비욘세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에서의 비욘세, 2013년

레이디 가가의 해석

그런데 이번 레이디 가가의 취임식 국가와 2016년 수퍼볼  때의 국가를 비교해보면 그 차이는 비욘세가 두 공연에서 보여준 차이보다 훨씬 크고 두드러진다. 특히 이 부분은 레이디 가가의 편곡 의도가 분명하게 나타난다. 레이디 가가의 평소 창법이 아니라 오페라, 아니 브로드웨이 뮤지컬에서 볼 수 있는 창법과 편곡을 사용한 거다. 어떤이는 이를 두고 마치 <뮤지컬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곡 'I dreamed a dream'과 같은 스토리텔링이 들어갔다고 까지 말한다. 미국 국가의 가사를 이해하면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미국 국가(Star-Spangled Banner, 별이 빛나는 깃발)의 가사는 노래에 사용되기 전에 이미 시로 존재하던 작품이다. 이 작품은 영국이 미국을 재침공했던 1812년 전쟁을 기념해서 지어졌다. 그 전쟁 당시 영국의 군함들은 수도 워싱턴 DC로 통하는 볼티모어 항구에 있던 요새인 포트 맥헨리에 밤이 새도록 포화를 퍼부었다. 이 시를 지은 아마추어 시인 프랜시스 스콧 키는 그 엄청난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고 버티는 요새를 직접 보면서 감동을 받았고, 2년 후에 이 시를 지었다.

레이디 가가가 공연에서 변박자를 사용하고 몸을 돌려 손짓까지 하면서 강조한 부분, "gave proof through the night that our flag was still there(밤새 우리의 깃발이 쓰러지지 않은 증거라)"는 휘날리는 성조기가 미국이 함락되지 않은 것을 상징하는 대목인데, 그 때 레이디 가가가 가리킨 깃발들은 바이든 취임식 준비위가 의사당 앞 워싱턴 몰에 관중이 모이는 것을 금하는 대신 코로나19로 사망한 40만 명의 미국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꽂아둔 수많은 국기였다. 미국 국회의사당은 1812년 전쟁 때는 영국군의 침략을, 2021년에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침략을 받았는데 결국 우리는 나라를 지켜냈다는 것, 그리고 휘날리는 국기가 그걸 보여준다는 해석이었다.

국가의 표준, 휘트니 휴스턴

현대 미국인들에게 "최고의 국가를 부른 가수가 누구냐"고 물으면 여러 답이 돌아오지 않는다. 많은 가수들의 국가를 들어본 사람들은 입을 모아 "휘트니 휴스턴"이라고 답한다. 이는 휘트니 휴스턴이 1991년 수퍼볼 때 부른 국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휘트니 휴스턴이 1991년 수퍼볼 때 부른 국가

이 영상 밑에 달린 댓글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이번 레이디 가가의 국가가 인기를 끈 직후 이 영상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레이디 가가의 국가를 듣고 다시 이 영상을 찾아왔다. 레이디 가가의 국가도 좋았지만, 어떤 가수도 휴스턴의 국가를 넘어설 수 없다." "휘트니 휴스턴은 국가의 표준을 만들었다. 근처에 올 수 있는 가수도 없다." 그리고 "나는 미국인이 아닌데도 이걸 들으면 (미국에 대한) 애국심이 생긴다."

모든 가수들이 인정하지만 미국의 국가는 아주 부르기 힘든 노래다. 특히 "and the rockets red glare"라는 부분은 난이도 높은 오페라 아리아처럼 삐끗하기 쉽다. 하지만 휘트니 휴스턴은 힘들어하기는 커녕 편안한 웃음을 얼굴에 가득담고 하늘 높이 고음을 쏘아올린다. 목소리는 티 하나 없이 깨끗하고 힘은 남아도는 것처럼 넉넉하고 풍성하다.

하지만 이 곡이 좋은 이유는 단순히 휴스턴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이 곡을 편곡한 재즈 뮤지션 존 클레이튼이 숨은 공로자. 물론 나는 클레이튼의 편곡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명할 만한 실력이 없다. 여기에 관해서는 음악을 정교하게 분석, 설명하는 것으로 유명한 유튜버 찰스 코넬이 만든 아래의 비디오를 보시기 바란다. (비슷한 유튜버로 애덤 닐리가 있다. 레이디 가가의 국가에 대해서는 닐리의 설명을 들어보시길).

다른 가수들의 국가 도전사

애덤 닐리는 휘트니 휴스턴의 1991년 공연을 두고 다른 가수들에게는 "문화적인 짐(cultural baggage)"이라고 까지 말했다. 휴스턴 영상의 댓글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람들은 가수들이 국가를 부르면 반드시 휴스턴과 비교하는데, 이건 억울하다 싶을 만큼 아무도 흉내내지 못하는 그런 공연이었던 거다.

그래서 가수들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해석해서 부를 뿐 휴스턴의 국가와 정면대결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제법 잘 불렀다는 평가를 받는 가수도 있고,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다. 가령 2018년 NBA 올스타 게임에서 국가를 부른 가수 퍼기의 경우, 경기장에 서있던 선수들도 웃음을 터뜨릴 만큼 최악의 공연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평소 스타일대로 국가를 재즈풍으로 해석했지만 너무나 수준이 떨어졌기 때문에 우스꽝스런 노래가 된 것이다. 퍼기 본인도 인정했지만 위험을 감수한 해석이었고,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가수들 중에는 누가 국가를 잘 불렀다는 평가를 받을까? 빌보드는 몇 년 전에 수퍼볼 최고의 국가 톱10을 발표했다. 여기에서도 휘트니 휴스턴의 국가를 1위로 뽑았고, 이에 전혀 이견이 없지만, 그 밖에 최고의 공연을 꼽으라면 내 개인적으로 국가를 거의 아카펠라 성가처럼 담백하게 부른 딕시칙스의 2003년 수퍼볼 공연제니퍼 허드슨의 2009년 수퍼볼 공연을 꼽겠다. 특히 허드슨은 그 성량과 개성있는 해석에서 휘트니 휴스턴에 도전장을 냈다고 할 만한 유일한 가수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이 가수들의 공연을 이어붙여 만든 롤링스톤의 멋진 영상도 꼭 한 번 보시길.

['박상현의 미디어 인사이트'에 대해 한 구독자가 질문을 보내주셨습니다]
"박상현님의 글은, 늘 잘 가르치는 교수님의 수업 같아요!! (칭찬입니다) 작성하기 전에 다양한 주제들이 있을텐데 그중에서 어떻게 어떤 기준으로 주제를 선택 하시는지가 궁금하네요!!"
(혹시, 다뤘으면 하는 주제가 있다면 하단 의견 링크 통해 알려주세요!^^)

[박상현 님의 답변입니다]
씨로켓 뉴스레터 중에서 ‘박상현의 미디어 인사이트’는 제목처럼 미디어 산업에서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를 다룹니다. 하지만 미디어의 인사이트는 어디에서 오느냐는 질문을 던지게 되죠.
이 뉴스레터를 시작할 때 가졌던 고민이 그거였습니다. 과거에는 미디어/미디엄 자체는 큰 변화가 없었기 때문에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는 곧 콘텐츠의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온 이후로는 미디어가 테크놀로지와 맞물리면서 큰 변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미디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콘텐츠를 넘어 새로운 기술과 그 기술이 가져온 변화 전체를 바라볼 필요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지난 1년 동안 다룬 내용들을 보시면 알겠지만) ‘박상현의 미디어 인사이트’는 미디어 변화의 최전선에 있는 스토리들을 찾아내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첫번째 스토리였던 퀴비(Quibi)를 비롯해서 많은 이야기들이 테크 환경의 변화 속 미디어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미디어의 탄생은 항상 브랜딩을 수반하게 됩니다.

3대 방송사가 지배하는 구도가 유지되는 세상이라면 전혀 필요없겠지만, 수많은 미디어가 빠르게 등장하며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브랜딩도 놓치면 안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미디어 인사이트’는 미디어 테크, 콘텐츠와 브랜딩을 종합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PR의 성공, 실패 사례도 이야기하면서 사회적 변화와 그에 따른 오디언스의 요구도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