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초짜리 슈퍼볼 광고라고?

미식축구는 전체 게임 시간 중에서 실제 경기 시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극히 적기 때문에 TV 중계를 하는 방송국에서는 광고를 팔기에 좋은, 아주 상업적인 경기다. NFL의 평균 게임시간은 3시간 12분이지만, 실제로 선수들이 뛰는 경기 시간은 약 11분에 불과하기 때문에 평균 1백 개가 넘는 광고를 방송할 수 있다. 그렇다 보니 NFL의 최종 승자를 가리는 슈퍼볼은 돈 많은 광고주들이 가장 눈독을 들이게 되고, 따라서 단위 시간당 가장 비싼 광고비를 받는 행사이기도 하다.

워낙 돈을 많이 지불하며 시청자들의 눈동자를 끌어야 하니 다들 아주 공들여 광고를 만든다. 그렇다 보니 슈퍼볼 때 나오는 광고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쟁종목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아니 요즘은 경기 직후에 "이번 슈퍼볼 최고의 광고, 최악의 광고는?"이라는 기사가 쏟아져 나올 만큼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주요 광고주들은 자신들만의 '필살기'를 만들거나, 인기가 확인된 주제를 유지하는 등의 전통이 생기는 모습도 보인다.

전형과 비틀기

그런 이유로 많이 사용되는 주제가 동물이다. "아이와 동물을 주제로 한 광고, 그리고 코믹한 광고는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광고주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아왔다. 대표적인 경우가 버드와이저 맥주의 광고다.
버드와이저를 만드는 앤 하이저 부쉬(Anheuser-Busch)사는 오래도록 클라이즈데일(Clydesdale) 종의 말을 광고에 사용해서 아예 '버드와이저 클라이즈데일'이라는 이름까지 붙었다. 매년 이 말들이 (대개 강아지와 함께) 등장하는 버드와이저의 슈퍼볼 광고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눈을 떼기 힘들지만, 사실 그다지 창의성이 돋보이는 광고는 아니다. 물론 그래도 항상 가장 인기 있는 광고 순위에 올라갈 만큼 시청자들이 기다리는 광고다.

그래서 올해 슈퍼볼을 보던 시청자들이 아래의 광고를 봤을 때는 당연히 버드와이저의 광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경쟁기업인 새뮤얼 애덤스 맥주회사가 낸 광고였다. 미국 중서부인 미주리주에 본사를 둔 버드와이저와 달리 새뮤얼 애덤스는 동부인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본사를 둔 기업. 이 광고는 그 지역적 특징을 잘 강조하고 있다.

광고의 주제는 보스턴에서 온 사고뭉치 사촌이 저지른 대형사고. 보스턴 출신의 배우 마크 월버그를 연상시키는 옷차림의 백인 남성들과 그들이 사용하는 강한 보스턴 억양(현대 자동차도 지난해 슈퍼볼 때 이 억양을 사용한 광고를 내기도 했다)이 어우러져 대기업 버드와이저의 전통적인 광고를 살짝 비트는 재치를 발휘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물론 이 광고는 버드와이저가 만들어낸 전형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고, 작은 기업이 대기업을 상대로 사용했기 때문에 좋은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코믹, 향수, 그리고 섹시함

제대로만 만들 수 있다면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 큰 인기를 끈 또 하나의 광고가 치토스의 'It Wasn't Me(내가 한 거 아냐)'였다.

실제 부부인 밀라 큐 니스와 애쉬튼 커쳐가 출연한 이 광고는 커쳐의 치토스를 큐 니스가 몰래 먹고는 발뺌한다는 내용. 그냥 광고만 놓고 보면 밋밋한 듯 하지만, 2000년대에 큰 인기를 끈 레게 스타 섀기(Shaggy)의 곡이 등장할 뿐 아니라 가수가 직접 출연해서 미국인들에게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코믹과 향수의 조합으로 성공한 광고.

사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섹시함을 동원한 광고는 슈퍼볼에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특히 노출이 심한 여성들이 등장하는 성적인 광고는 온 가족이 보는 슈퍼볼이라는 점을 고려해 수위만 적절히 조절하거나, 코믹함으로 포장할 경우 큰 문제없이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리 재미있는 내용이라고 해도 여성을 대상화하는 광고에는 큰 리스크가 실린다. 미투 운동으로 할리우드를 비롯한 미국 쇼비즈니스에서 여성들이 어떤 위협과 폭력에 노출되어 있는지 생생하게 드러난 후에 생긴 일이다.

하지만 아마존은 섹시함을 여성에서 남성으로 옮겨서 이를 해결했다. 아래의 알렉사 광고가 그거다.

스마트 스피커는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는 대부분 남성의 목소리를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할 뿐 아니라, 주요 등장인물들도 흑인 배우를 사용했다는 점에서 광고 제작사가 (BLM운동 이후) 바뀐 사회적 분위기에 아주 민감하게 측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회적 메시지

사회적 분위기를 이야기하면 지프(Jeep) 광고도 빼놓을 수 없다. 지프는 민주당, 바이든 지지자이면서 동시에 블루 컬러 백인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인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을 광고에 출연시켰다.

지난 몇 년 동안 국론이 극도로 갈라진 미국 사회를 의식한 이 광고는 '우리는 하나'라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다소 식상하지만 여전히 잘 먹히는) 영상미를 통해 전달한다. (하지만 이 광고가 나간 후 며칠이 되지 않아 스프링스틴이 음주운전 혐의로 체포되면서 지프는 공식적인 채널에서 이 광고를 모두 없앴다. 스타를 이용한 광고가 가진, 피할 수 없는 리스크다).

같은 자동차 기업이지만 GM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이든 행정부의 출범을 알리는 광고를 냈다. GM은 전기자동차에 미래를 걸겠다는 각오를 여러 차례 밝힌 바 있지만, 이번 슈퍼볼 광고에서는 이를 전면에 내세웠다.

그런데 그 방식이 과감했다. 코미디언들을 내세워서 1인당 전기자동차가 가장 많은 노르웨이를 따라잡겠다는 코믹한 도전장을 낸 것이다. 노르웨이 사람들을 "루저(losers)"라고 부르는 농담을 하면서 미국이 그런 조그마한 나라에 뒤질 수 없다며 2025년까지 30개의 전기차 모델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하는 광고다. 물론 노르웨이 사람들 모욕하는 투가 아니고, 광고 속 주인공인 윌 패럴이 노르웨이인 줄로 알고 찾아간 곳이 스웨덴이었다는 (미국인들이 세계 지리에 무지하다는) 자학적 개그를 사용한 재미있는 광고였다.

재미있는 것은 그 광고를 본 노르웨이인들의 반응이었다. 노르웨이의 한 대학교(University of Agder)에서 GM의 광고에 답하는 광고를 재빨리 만든 것. "미국인들이 쳐들어온다"면서 노르웨이와 전기자동차 경쟁에 진 미국인들이 화가 났으니 그들을 달래야 한다며 사과하는 영상이 담긴 코믹한 광고였다. "전기자동차만이 아니라 다른 것들에 대해서도 우리가 미국에 앞선 것을 알면 미국인들이 화날 것"이라면서 미리 사과하자는 내용이다.

광고 속에 노르웨이의 홍보가 잔뜩 담겨있는 것은 물론이다. 특히 미국인들이 비싼 등록금과 형편없는 의료보험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재미있게 놀리면서 노르웨이의  사회보장 시스템을 자랑한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1년 유급 출산휴가"는 미국인들에게는 꿈도 꿀 수 없는 일.

변화한 미디어 세상

그렇다면 올해 최고의 광고는 어떤 기업이 만들었을까? 바로 소셜미디어 레딧(Reddit)이다. 레딧은 얼마 전 게임스탑 주가폭등 사태를 만들어낸 주범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최근 언론의 주목을 크게 받고 있었다. 레딧 역사상 이만큼 미디어에 오르내린 적도 없을 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으니 여세를 몰아 자리매김을 제대로 하기 위해 슈퍼볼 광고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6B 밸류에이션을 인정받아서 $250M 펀딩에 성공했으니 이제 레딧도 작다고 할 수 없는 기업이 되었지만, 사실 슈퍼볼은 소비자용 제품, 서비스를 만드는 대기업들의 놀이터라는 점에서 레딧이 낄 동네는 아니다. 30초짜리 광고를 내보내는데 $5M이 훌쩍 넘는 돈을 내야 하니까 그렇다.

그래서 레딧이 아주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중개사인 CBS로부터 5초짜리 스폿을 산 것. 산술적으로 약 1/6 가격이니 아마 1백만 달러를 내지 않았을까 싶은데, 거기에 제작비도 하나도 들지 않았을 슬라이드를, 그것도 절대 5초 안에 읽을 수 없을 만큼 글씨가 빽빽한 슬라이드 한 장만 달랑 올려두는 발칙한 짓을 했다. 광고는 전형적인 자동차 광고처럼 시작하는데, 갑자기 송출사고가 난 것처럼 화면이 지지직거리면서 슬라이드가 잠깐 등장한다.

슬라이드의 타이틀은 "와, 이거 진짜로 되네(Wow, this actually worked)"다. 마치 누군가 CBS의 중계방송을 해킹한 듯한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슬라이드가 사라지고 (역시 전형적인 슈퍼볼 광고처럼 보이는) 말이 달리는 장면이 잠깐 등장하다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게 뭐지?" 하면서 폰을 들고 검색을 시작했고, 구글 트렌드에서 슈퍼볼 시간대에 가장 많이 검색한 광고 2위를 차지했다. 최소한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뽑아낸 것이다.

변화한 미디어 세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