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머리를 화려한 색으로 염색을 하기 시작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미국의 젊은이들, 특히 10대의 아이들이 눈에 띄게 화려한 형광색으로 염색을 하고 다니는 일은 일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면 오히려 그다지 흔하지 않았다. 그런데 약 2019년을 전후로 핑크색이나 형광 초록, 애쉬블루 등의 눈에 띄는 색의 머리를 한 아이들을 길에서 보게 되는 일이 흔해졌다.

물론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2020년을 지나면서 미국에서 색색의 염색을 한 아이들이 몰려다니는 게 더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미국의 10대들은 그런 아이들을 "e-girls (and e-boys)"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어디에서 모여서 노는지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바로 틱톡(TikTok)이다.

하위문화의 계보

e걸의 'e'는 물론 electronic에서 왔고, 그냥 '온라인' 정도의 의미다. 주로 온라인 앱이나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인스타그램, 디스코드에서도 발견되지만 무엇보다 틱톡을 통해 크게 확산된 10대(와 20대 초)들의 하위문화다.

VSCO 걸의 필수 아이템

어른들은 비슷한 트렌드로 착각하지만 e-걸 보다 약간 앞선 문화가 VSCO(브스코)걸이다. 브스코걸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좋아하지만 e-걸과 달리 자연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많고, 인스탁스 등의 즉석카메라, 스크런치("곱창밴드"), 버켄스탁, 피엘라벤 가방 등의 "필수 아이템"들을 자랑하며, 다소 어린 축에 속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VSCO라는 이름이 보여주듯 이미지 보정앱 VSCO를 사용하는 아이들이다.

브스코걸이 주로 사진을 중심으로 한다면 e-걸은 영상으로 더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e-걸은 메이크업과 머리 염색에서 크게 차별화가 된다. 앞서 이야기한 것 처럼 인공적인 느낌이 강한 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길고 짙은 마스카라에 코와 볼 브러시로 터치를 하고, 그리고 눈 옆이나 볼에 하트나 X자 모양을 그려넣는다.

커다란 (음악밴드의 이름이 들어간) 셔츠를 입고, 허리선이 높은 바지나 체크무늬 스커트를 입고, 코에 피어싱을 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런 외양 때문에 2010년대 초에 유행한 씬걸(scene girl)과 유사하다는 이야기도 한다.  당시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던 이 하위문화는 뒤에 나타난 VSCO걸, e-걸의 큰 언니 격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Scene하위문화, 씬걸

모든 유행이 그렇듯 미국 10대들의 하위문화도 결국 앞세대에게서 차용한 요소가 있고, 자신들만의 차별화를 추구하는 부분이 존재한다. 따라서  씬걸 역시 이전의 10대 하위문화에서 발전한 것이다. 씬걸 보다 좀 더 위로 올라가면 emo(이모)라는 하위문화가 나오고, emo는 고스족(Goths), 펑크(Punks)와 조금씩 닮은 아이들이다.

헤비메탈 가수처럼 머리를 길게 기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으로 차려입으며 립스틱까지 검은 색으로 칠한 10대, 20대를 고스족이라고 부르지만 사실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모두 고스족이 아니고, 그 중 일부는 메탈헤드(Metalheads)나 펑크이고, 일부는 이모(emo)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이 3가지 하위문화는 아주 비슷해보인다.

이들을 구분하는 방법으로 이런 농담이 있다. 이모(emo라는 말은 emotional을 줄인 것이다)는 "세상은 망가졌어. 하지만 나는 그걸 고칠 수가 없어서 슬퍼"라고 말하고, 고스는 "세상은 망가졌어. 하지만 그 어두움 속에 묘한 아름다움이 있어"라고 하고, 펑크는 "세상은 망가졌어. 그래서 나는 화가 났고, 고치기 위해 싸울 거야"라고 한다면, 씬은 "세상은 망가졌어. 하지만 나한테는 상관없는 일이니 살아있는 동안은 즐길 거야"라고 한다는 것이다.

이들의 문화를 정확히 구분하는 게 때로는 불가능하지만 유사점과 차이점을 찾아내는 일은 재미있기도 하다. 사우스파크라는 만화에서는 고스족이 자신들을 이모와 착각하지 말라고 하면서 차이점을 설명하다가 자기들도 헷갈려하는 장면이 나온다.

고스족과 비슷한 외양을 하고 비슷한 허무주의적 경향을 보이지만 훨씬 더 감정적인 아이들이 이모라고 한다면, 펑크는 어떻게 구분할까? 펑크록(Punk Rock)의 대표적인 그룹 그린데이(Green Day)의 몇몇 곡들이 이들의 태도를 가장 잘 설명해준다. 세상을 보는 시각은 비슷해도 허무적이라기 보다는 분노에 가깝다. (분노는 항상 세상을 고칠 마음이 있는 사람들의 것이다).

아시아적인 요소의 등장

고스, 이모, 펑크 하위문화들 중에서 가장 상업화에 성공한 것이 펑크일 것이다. 안나 수이(Anna Sui),  장 폴 고티에(Jean Paul Gaultier)같은 디자이너들은 펑크 패션의 요소를 자신들의 작품에 넣어서 활용했으며, 음악과 스트리트 패션으로 다양한 분파를 만들어냈다. 펑크는 유럽부터 일본까지 다양한 하위문화를 만들면서 확산되었다.

이모는 그 특성상 다양한 장르의 음악과 연결해서 해석한다. 비치보이스(Beach Boys)의 앨범 '펫사운드(Pet Sounds, 1966)'를 이모의 선구자적인 앨범이라고 설명하기도 하는데, 그린데이, 더스미스(The Smiths), 조브레이커(Jawbreaker) 등이 1990년대 이모를 대표하는 뮤지션들로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e-걸을 대표하는 음악은? 케이팝이다. 하지만 한국문화에 국한되지 않는다. e-걸의 메이크업을 잘 보면 소위 "숙취 메이크업"이라고 하는 일본식 '이가리 메이크업'이 기본임을 알 수 있고, 이들의 패션에 등장하는 색채는 하라주쿠 패션에서 보여지는 것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e걸들이 좋아하는 변신(transformation)영상은 중국판 틱톡인 더우인에서 인기를 끌던 것이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의 10대들에게 퍼진 것이다.

1980년대를 전후해서 퍼진 고스족과 펑크, 이모가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온라인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씬, 브스코와 같은 사진을 중심으로 한 비주얼 문화로 발전했다면, 2010년대 말에 이르면 중국의 소셜미디어인 틱톡과 만나 아시아적 요소가 강하게 들어간 e-걸 문화로 변화한 셈. 과거에는 상상도 못한 문화의 혼종을 온라인/소셜 미디어가 만들어낸 것이다.